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뿌리는 변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포도나무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맺는 열매가 포도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열심히 행하는 그 행위로, 말로, 신앙연수로, 위치로 자기 자신이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본다고 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은 회개를 하지만 어떤 일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기도 합니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가 있습니다. 이 인형은 인형 속에 인형이, 그 인형 속에 또 다른 인형이 있습니다. 그 깊은 곳에는 아주 작은 인형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변화됨이 없는 사람은 여러 겹의 자아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변화되지 않고 요동함이 없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본성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죄와 죄의 인격이 블랙홀처럼 버티고 그 사람을 붙들고 있습니다. 회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정확히 이루어져야합니다. 어떻게 이런 회개가 가능합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성령님은 우리로 나 자신의 뿌리를 볼 수 있게 하십니다. 내가 말했던 그 모든 말들, 그 모든 행동들, 품었던 마음과 모든 생각들이 얼마나 죄악 가운데 욕심 가운데에서 했던 것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을 들으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에 비로소 나타나게 됩니다.
-21년 1월 20일 설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