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노인팅 10집 이후 몇 년이 흘렀을 때, 모교 신학대학원 여학생회에서 나를 초대해 주셨다. 찬양인도를 주제로 한 사역자들을 위한 특강이었는데, 신학대학원인 만큼 남학생 비율이 높았지만, 여학생회 주관 모임인지라 만만치 않은 여성 사역자 인구가 공존하고 있었다. 강의를 마쳐갈 때쯤 질문을 받았는데, 나는 오늘까지도 그때의 나의 답변을 후회한다.
“여성 사역자로서 더 힘든 것 없으셨나요?”
아마 나의 입을 빌려 얼마나 여성으로서 사역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인지 공감과 지지를 기대했을 터인데, 나는 진짜 대책 없이 “큰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답했다. 나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했고, 또 내가 속한 무리 안에서는 여성인 내가 리더십을 갖는 것에 대하여 뒤로 돌아오는 잡음은 있었을 지라도 기회가 주어졌었기 때문에 단순한 답을 드린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질문을 던졌을 분의 의도와 마음이 그제서야 짐작되어 꼰대 같은 대답만 늘어놓은 나 자신이 정말 싫었다. 이 글을 빌려서라도 그분께, 그리고 오늘도 난처함을 겪고 있을 수많은 여성 사역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실 그날 그 강의실에서 내가 멍청하게 대답하게 된 것은 그 이전의 질문들에 말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찬양인도는 어떻게 해야 잘하나요?”, “여성 사역자로서 예배 인도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진 분의 성별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썩 좋지 않은 여러 마음이 스쳤다.
“찬양인도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나요?”
위와 같은 질문은 사실 2-3분 안에 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설교를 잘 하실 수 있나요?”, “선생님, 어떻게 해야 강의를 잘하시나요?”, “의사 선생님, 어떻게 해야 진료를 잘하십니까?” 와 같은 굉장히 광범위한 질문이다. 아마 위와 같은 질문을 내가 대상 직업군에 종사하시는 분께 묻는다면, 대부분은 “열심히... 오래...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습하시면요?” 와 같은 답을 하시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뭔가 “찬양인도”는 단순한 공식과 스킬로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듯한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솔직히 속상하고 때로는 화도 난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예배를 섬기는 여타의 다른 포지션과 다르게 많은 평신도 찬양 사역자들의 헌신으로 일구어 온 이 사역을 너무 쉽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로 여기지 마시라. 음악적 훈련, 예배의 가치와 태도를 이해해 가는 과정, 예배가 담는 메시지를 선곡을 통해서 풀어가는 실천, 팀과 성도님들을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 이 중에 하나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그 한 사람을 끌어안은 공동체의 기다림이라는 헌신을 통해 “좋은 찬양 예배”와 “좋은 찬양 인도자”가 길러질 뿐이다. (다시 쓰면서 생각해도 제 안에는 화가 많네요. 껄껄.)
그런데, 그 이후에 나를 덮쳐 온 두 번째 질문. “여성 사역자로서 예배 인도를 잘하려면...”이라는 말에는 수많은 함의가 있다고 느껴졌다. “여성이 하는 예배 인도와 남성이 하는 예배 인도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라는 전제는 과연 옳을까? 어노인팅 투어팀 시절 처음 예배 인도자로서 예배를 섬겼을 때, 집회 차 방문했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나를 담임 목사님 방으로 소환하셨다. 조언이자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답답하게 하는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전도사님, 이렇게 강력하고 힘 있는 예배 인도 참 좋네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자분이 이렇게 하면 어려우실 것 같아요. 기회가 있으시면 외국으로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롹커라는 애칭(?)을 달고 다니던 나의 강력한 (?) 포효하는 예배 인도 스타일이 당시 목사님께는 낯설고 불편하셨었나 보다. 게다가 여성이 강한 스타일로 찬양을 인도하는 것도 목사님께는 어색하셨던 것 같다. 하긴, 그분만의 선입견이라기에는 처음 <어노인팅 정규 10집>에서 예배 인도를 하고 나서도 프로듀서이시자 대표이셨던 기범 간사님께 많은 분들이 물어온 질문이 “어떻게 여성 예배 인도자를 세울 생각을 하셨어요?”였으니... 여성이 예배 인도를 한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시기에, 여성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십을 갖는 것은 더 불편하게 느껴지셨으리라 생각된다.
만약 내게 교회 안에서 여성 사역자에게만 독특하게 더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독특한 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할 수 있는 말은 많이 있다. 뭔가 차분한, 온유한 목소리로 말하고, 남성 사역자들이 잘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이고 섬세한 일들을 잘 다루어내며, 그래서 예배 인도 또한 따듯하게 감성을 터치하고, 성도들을 환영하는 느낌으로 해주시길 기대받는다는 것. 그래서 그다지 감성적이지 않고, 섬세하지 않은 여성 사역자들 중에 자신이 아닌 타인의 옷을 입고 역할극을 해야 하는 수많은 경우들이 있다는 것. (교단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여성 안수를 실행하는 교단에서도 여성 사역자들에게 찬양 인도를 할 기회는 주지만, 설교권을 쉽게 주지는 않는다는 것. 똑같이 신학교를 입학하고, 공부하고, 졸업했어도, 교육부서 담당 목회자가 대다수의 여성 사역자들이 머무르게 되는 자리라는 것. 사역지에 초청 되어서도 임신 여부와 출산이 늦어지는 이유, 혹은 남편의 내조와 육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묻는 질문들에 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할 것.
처음 어노인팅에서 찬양인도자의 자리를 맡게 되었을 때부터 내 안에는 엄청난 부담이 있었다. 계속 말하고 있는 “나의 존재 가치 증명”도 있었지만, 동시에 “여성 그리스도인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줘야만 하는 입장이었다고 할까? 실은 나는 아직도 그 입장의 무게를 쉽게 벗어던지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나에게 여성이 예배 인도한다는 것의 차이점을 물으면, 단순히 “음역 차이” 일뿐이다. 너무 많은 곡들이 남성 작곡자들로부터 나오고, 소개되어서 대부분의 찬양곡들을 전조 시키지 않으면 내가 편하게 부르기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그 외에는, 남성 사역자라고 해서 전부 “~~한 특징을 가졌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 사역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피해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던 사연 많은 여인을 기억한다. 이 땅에서 열린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예배 세미나의 대상이 그 여인이었기에, 그리고 그 고립되었던 여인이 세상을 향해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친 음성이 유대인들에게 닫힌 마음이었을 사마리안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기에. 그 사실을 성경이 귀하게 기록하고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나와 같은 여성 사역자 동료들에게 자신의 은사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지기를, 그렇게 여성 사역자를 세운 일이 너무 새롭고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되기를, 누구든 그 안에 넘쳐흐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선포할 수 있게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하고, 응원한다.
"여성" 그리고 "예배 인도자"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