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스캔들(scandal)'이란 단어는 헬라어 '스칸달론(σκάνδαλον)'에서 나왔다. 스캔들은 대개 '추문' '수치' '남부끄러운 일'로 번역되지만 스칸달론은 그런 뜻이 아니다. 헬라어 스칸달론은 '걸림돌' '덫' '거리낌' '잘못 혹은 죄를 범하게 하는 사물·사람' 따위를 뜻한다. 물론 스캔들이든 스칸달론이든 간에 모두 부정적 의미를 함축하는 건 사실이다. 허나 신약성서에 나오는 스칸달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될 때 '역설의 진리'를 웅변하는 용어로 돌변한다.
가령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스캔들의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33)"는 성구를 인용한다.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는 거치는 반석, 즉 '스캔들의 돌'이나 다름없는 분이다. 실제로 예수 자신이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 11:6)"고 말씀하신 바 있다. 사도바울도 참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역전의 스캔들'로 삼는 사람들이라 한다(고전 1:23~24 참조). 이것만 봐도 스캔들 신학이 어째서 중요한지 얼추 알 수 있으리라.
성서의 '스캔들' 개념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널리 일깨워 준 사람은 프랑스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1923~)였다. 그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등의 저서에서 예수나 바울이 '스캔들'이란 용어를 매우 강조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신약성서 학자들도 성서에 나오는 스캔들 개념의 특이성을 전혀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지라르만큼 예수와 바울 사상을 꿰뚫는 핵심어로 발전시키진 못한 상태였다. 스캔들 신학의 재발견에는 누구보다 지라르의 공이 컸음을 인정해야 한다.
'거리낀다'는 것은 헬라어로 '스칸달론', '스칸달리조'입니다.
걸림돌이란 뜻입니다.
이 말에서 영어 '스캔들'이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냥 추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변화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헤니라.'
십자가 속에 있는 것은 스캔들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