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뮤얼 러더퍼드.
“다음과 같은 표징은 참 신자와 배교자의 차이를 알려 준다.
참 신자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장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분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로 인한 고난을 기꺼이 감내한다. 참 신자는 율법이나 지옥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죄를 멀리한다.
참 신자는 겸손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 기지, 장점, 처지, 명예, 세상, 헛된 영광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참 신자는 공허한 신앙고백을 늘어놓지 않으며 선행을 실천한다. 참 신자는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
그는 먹거나 자거나, 무엇을 사거나 팔거나, 앉거나 일어서거나, 말하거나 기도하거나,
무엇을 읽거나 말씀을 듣거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는다.
참 신자는 매일 기도에 힘쓰며 자신의 모든 길과 행동을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하나님께 의탁한다.
그는 조롱을 당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보다 먼저 조롱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구원의 확신”의 오류와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열매가 따라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다고 했을 때에 그 믿음에 따르는 열매, 결과의 증거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포기한 것은 무엇이고 손해본 것은 무엇이고 변화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죄에서의 회개’가 진정 있었는가? 죄를 미워하고 죄에서 돌이키고자 하며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는가?
오늘날 이러한 구체적 증거와 열매가 없음에도 그저 믿었다는 것 때문에 함부로 구원을 인증해주고
직분을 주고 봉사를 시키지 않는가? 함부로 세례를 베풀지는 않는가? 함부로 성찬에 참여하게 하지는 않는가?
행위와 믿음이 같이 가야 한다는 행위 구원이 아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참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성령의 중생을 통해 생겨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 생각이 세속적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 생각으로, 내 마음이 세상을 사랑함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함으로,
내 의지가 세상을 좇음에도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를 좇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더불어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내 속에서 나의 영과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증해주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경험은 내면에 일어나는 성령의 열매와 성경에 나타나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증거가
내 삶에 나타나는 경험을 통해서이다.
책에서 이런 글귀가 마음에 든다.
“환상이나 음성, 직접적 영감이나 새로운 계시,
느닷없이 떠오로는 감격이나 흥분에 휩싸이는 현상은 사탄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따라할 수 없는 확고한 증언이 있는데 바로 ‘거룩한 성품’과 ‘경건한 신앙 인격’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운명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해결책이 우리 자신의 손에 있다고 확신하는 ‘뻔뻔한 인본주의’입니다.”
우리는 행위구원에 빠지지 않는 믿음에 의한 은혜의 구원을 말하면서도,
자칫 믿음이면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다는 복음의 방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하는 삶의 자세가 요구된다.
정말 믿음이 있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믿음의 증거, 확신의 열매를 보여달라.
내 성향, 내 사고, 내 의향이 세상이 아닌 그리스도께로,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었고, 변화되어 가고 있는가?
생명은 자라가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이다.
값싼 복음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말고, 참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자가 되어가자.


자칫 믿음이면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다는 복음의 방임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해야”하는 삶의 자세가 요구된다.
값싼 복음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지 말고, 참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자가 되어가자.
책을 요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3줄이 제 마음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