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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왕, 그리고 대통령

 

고종 왕비 민자영의 무녀 '진령군' 국정농단

박정희·전두환, 국가 중대사에 역술 참고

김대중, 파묘·이장 후 대통령 당선 첫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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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고종의 아내 중전 민씨(민자영)가 1882년 임오군란을 피해 충북 장호원에 숨어지낼 때 '박창렬'이라는 미색의 무녀를 불러 앞날을 물었다. "8월에 한양으로 올라가 다시 귀한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신통하게도 무녀의 점은 적중했다. 군란이 청나라에 의해 진압되자 민비는 8월1일 무녀를 대동하고 환궁했다. 민비는 무녀에게 진짜 영험하다는 뜻의 '진령'(眞靈)이란 이름을 하사하고 군(君)으로 봉했다. 진령군은 이후 거칠 게 없었다. 관우의 딸을 자처해 궁궐 밖 동소문동에 관우 사당을 짓게 하고 '북관왕묘'라 칭했다. 북묘는 고관대작이 되려고 뇌물을 손에 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 1972년 10월17일은 유신헌법 제정을 위한 비상계엄 선포일로, 박정희가 합동통신 기자 출신인 김성락 중앙정보부 판단기획실장의 건의를 받아 정한 날로 알려져 있다. 김성락이 청와대 북악산 자락 세검정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는데 10월17일을 거사일로 점지해줬다는 것이다. 10월17일은 공교롭게도 1969년 박정희가 3선 개헌의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날이기도 하다. 조선말 김옥균의 개화파가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날은 12월4일이지만 음력으로는 10월17일이라서 놀라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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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 전두환도 무속을 믿었다. 전두환은 무속이 가미된 전통문화 장려를 명분으로 '국풍(國風) 81' 운동을 일으켜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려 했다. '국풍'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5공 실세로 군림한 허문도가 오대산 월정사 탄허스님에게 조언을 구해 지은 말이라고 한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실인 직선제 대통령 선거일도 전두환이 청와대 인근 청운동에 살던 도사의 말을 믿고 12월16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도사는 전두환 측근에게 "12월 16일과 17일 두 날 중 어느 날을 택해도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다"고 했는데, 예언이 적중한 셈이 됐다.

 

▶ 김대중은 조상의 무덤을 여는 파묘 후 대통령에 당선된 첫 사례다. 김대중은 1971년 박정희에 이어 1987년 노태우, 1992년 김영삼에게 대선에서 내리 패하자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던 부친 묘와 포천에 있던 모친 묘를 용인시 묘봉리 산으로 이장해 합장했다. 김대중의 부모 묘는 '육관(六觀) 도사'로 불린 지관 손석우가 소점한 곳으로, '천선하강'(天仙下降), 즉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오는 형상을 띤 천하의 명당으로 소개됐다. 김대중은 파묘와 함께 거주지를 동교동에서 일산 정발산동으로 이사했고, 2년 뒤 마침내 권좌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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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발동하기 직전 '명도사' 명태균 씨가 구속된 데 이어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체포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건진은 윤 대통령 부부와의 인연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검찰이 권력 공백을 틈타 '캐비닛'을 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개입설의 장본인인 천공(본명 이천공)의 미래에도 관심이 쏠린다. 천공은 올해 "2025년 윤석열이 통일 대통령이 된다"고 호언장담했는데, 탄핵소추를 당한 윤 대통령의 처지만 놓고 보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천공의 예언이 적중할지, 아니면 점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이 회자될지 두고 볼 일이다.

 

jahn@yna.co.kr

 

[올드&뉴] 무당과 왕, 그리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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