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3장: 종교의 씨앗, 4장: 어리석은 신앙

by 더락 posted Jun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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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었다.

 

 

1. 이 자연적 은사의 특성

사실상 인간의 마음속에 타고난 본능에 의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아무도 무지를 구실로 삼아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적 위엄을 어느 정도나마 깨달아 알 수 있는 이해력을 각자에게 심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신선한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신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뿌리깊은 확신을 갖지 못할 만큼 미개한 국민이나 야만적인 종족은 없다.

사실 우상 숭배도 이에 대한 풍부한 증거다.

 

 

2. 종교는 임의의 발명품이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순박한 민중들을 속박하기 위해 교묘한 술책으로 종교를 창안해 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예속시키기 위해, 영리한 사람들이 종교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고안해 내서, 이것으로 일반 대중에게 존경심을 일으키며, 공포심을 갖게 하였다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씨앗에서 싹이 움트듯이 인간의 마음에 종교적 성향을 낳게 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면 아마 그들은 결코 이 일을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3. 실제적인 불신앙은 불가능하다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신()이 존재한다는 신념이 나면서부터 고유하다. 그리고 이 신념은 모든 사람의 골수에까지 깊이 고정되어 있다.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잘못된 것들이 없어지며, 종교는 날이 갈수록 성장하며 개량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뒤에서도 곧 말하겠지만), 세계는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에 관한 일체의 지식을 몰아내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부패케 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 열심히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 신의식(神意識)은 도리어 무성해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모태에서부터 터득하며 많은 사람이 전력을 다하여 이것을 잊어버리려고 할지라도 본성 그 자체가 아무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릴루스도 역시 플루타크의 저서에서 곧 종교가 생활에서 상실되면 인간은 짐승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비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형태의 죄악에 붙잡혀 그들은 끊임없는 혼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짐승보다 더 뛰어나게 하며, 이 예배를 통해서만 인간은 불멸을 동경하게 된다.

 

 

4장 이 지식은 부분적으로는 무지, 부분적으로는 악의로 말미암아 질식 혹은 부패되었다.

 

 

1. 미신(迷信)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는 사실은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이 씨앗을 마음에 소중히 키우고 있는 사람은 백 사람 가운데 겨우 한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그것을 무르익게 해서 때가 되어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1:3). 그 결과 이 세상에는 진정한 경건이라는 것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여 주신 그대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자신의 억측에 따라 하나님을 상상한다. 이런 자들은 필경 파멸을 향해 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후에는 아무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봉사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에서 만들어 낸 허구와 망상에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에 대한 의식적인 외면

이들은 고의적으로 자신을 무감각하게 한다(14:1; 53:1). 또한 하나님에게서 그 본질을 제거하지는 않으나 그 심판과 섭리는 박탈하여 하나님을 하늘에 있는 게으름뱅이로 가두어 버림으로써 사실상 하나님의 존재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말살시키고 무분별한 욕망에 빠지는 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이다. 즉 그들이 어떤 신의 존재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의 능력을 제거함으로써 그 영광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한, 그들은 무감각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망각하고 이 망각은 계속 그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3. 우리는 자신의 망상에 따라 하나님을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미신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입증하신 것만을 붙잡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 그가 기뻐하시는 것들은 멸시 혹은 공공연히 거절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거짓된 의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망상을 예배하며 찬양한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에 대하여 모호하고 거짓된 견해를 가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의미한다고 보았다(4:8). 또한 다른 곳에서는 에보서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지낸 자들이며, 그때에는 유일하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외인이었다고 하였다(2:12). 적어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유일신을 생각하든, 다신을 생각하든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두 경우에 있어서 다같이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고 이 하나님을 저버렸으며 또한 그를 버림으로써 저주받을 우상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위선(僞善)

여기 또 두 번째 죄가 있다. 그것은 곧 적어도 강요당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반항하며 끌려가기 전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경외하는 데서 생기는 자발적인 두려움에 감동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강요당하는 노예적이며 강제적인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체 위장함으로써, 죄의 탐닉을 제재하지 아니하고 자기로 만족하며, 또한 자신의 육체적인 방종을 성령의 고삐로 제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방종에 빠지기를 더 좋아하는 무리들이다. 위선자들은 이러한 왜곡된 길을 걸으면서도 그들이 멀리하고 있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전생애를 바쳐 시종일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행위에서 대담하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찮은 제물로 하나님을 회유하려고 열중한다.

-마땅히 성결한 생활과 완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함에도 천박한 것들과 무가치한 의식들을 날조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고 한다.

-이는 그들이 속죄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피조물인 그들 자신을 신뢰한다.

-마침내 그들은 거대한 오류에 그들 자신을 얽어맴으로써 한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기 위해 번쩍이던 그 섬광을 우매한 죄악으로 질식시켜 마침내는 꺼지게 한다.

-그러나 그 씨앗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결코 근절될 수 없다. 즉 신성에 대한 어떤 관념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씨앗이 매우 부패하였기 때문에, 가장 나쁜 열매를 맺을 뿐이다.

-평온할 때에는 익살스럽게 하나님을 희롱하며, 허튼 소리로 수다를 떨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일단 절망이 그들에게 엄습해오면 그들은 자극을 받아 하나님을 찾게 되며, 형식적이나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것이 아니며 벌써부터 나타났어야 할 것이 완고함으로 말미암아 억제되어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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