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5장: 그분을 믿지 않는 이유

by 더락 posted Jun 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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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주 창조와 그 계속적인 통치에서 빛을 발한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1-10)

1. 하나님의 자기현현(自己顯現)은 명백하기 때문에 어떠한 변명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종교의 씨앗을 심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계시하셨으며 우주의 전 창조속에서 매일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 결과 인간은 눈을 뜨기만 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의 본질은 불가해(不可解)하며 그 신성(神性)은 인간의 모든 지각을 초월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 위에 영광의 명백한 표적을 새겨 놓으셨으며 그것은 너무나 뚜렷하고 확실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식하고 둔한 사람이라 해도 무지를 구실로 삼을 수 없다(104:2-4; 11:4). 히브리서 기자가 이 세계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우아하게 표현하였던 이유는, 정교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 세계야말로 일종의 거울이요, 바로 이 거울로 달리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정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11:3; 19:2이하; 1:19-20).

 

2. 하나님의 지혜는 온 인류에게 제시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보여 주는 증거는 하늘과 땅에 셀 수 없이 많다. 그것은 천문학이나 의학, 또는 일체의 자연 과학의 엄밀한 연구 대상으로 정해진 심원한 것들만이 아니라 가장 배우지 못하고 가장 무지한 자라도 보지 않을 수 없게 제시되었다. 눈으로만 배운 일반 대중이나, 가장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그 기술의 탁월함은 깨닫게 마련이다. 그것은 특수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천성(天星)의 무수한 다양성이 그 자체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를 풍부하게 보여 주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3. 인간은 신적(神的) 지혜의 최상의 증거다.

따라서 옛 철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인간을 가리켜서 소우주(小宇宙)라고 한 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과 지혜의 특별한 표본이며, 우리가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주의하는 데 싫증만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경이를 그 안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4. 인간은 배은망덕하게 하나님을 대항한다.

인간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무수한 사역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공장과, 동시에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이 넘쳐흐르는 창고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교만에 부풀어 스스로 잘난 체한다. 인간이 자신의 영육(靈肉)엣 일백번이라도 하나님을 발견함에도 불구하고, 이 탁월성 자체를 구실로 삼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 광란이야말로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 그들은 만물의 창조주이신 분을 자연으로 대치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삭제해 버린다.

 

5. 피조물과 창조주의 혼동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하고 찬양해야 할 참되신 하나님을 몰아내기 위하여 영상적(影像的)인 신격(神格)을 고안해 내었다. 자연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이다. 하늘과 땅을 관찰하며, 과거와 미래를 결합시키며, 오래 전에 들은 것을 계속 기억에 담아 두며, 즐겨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생각해 낼 수 있는 영혼의 그 다방면의 민첩함, 그리고 훌륭한 것들을 발명해 내며 많은 놀라운 발명품의 어머니인 영혼의 그 다방면의 교묘함, 이러한 것들은 분명히 인간에게 신성(神性)이 있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이다.

 

6. 창조주는 자신의 주() 되심을 창조에서 계시하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성을 정관(靜觀) 할 때마다, 한 분 하나님이 존재하셔서, 바로 이 분이 자연 전체를 다스리시며, 우리들로 하여금 그를 바라보게 하시며, 우리의 신앙을 자기에게 향하게 하시며, 또한 자기에게 예배를 드리고 자기의 이름을 부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지 않는 한 이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감추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7.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

하나님께서는 인류 사회를 다스리실 때, 섭리를 잘 조절하셔서, 무수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인자와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러나 명백하고 일상적인 지시에 따라, 경건한 자에게는 관대하심을, 악하고 범죄한 자에게는 엄격하심을 선언하신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 죄를 벌하실 때 그의 진노를 명백히 하시는 것은, 그가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는 뜻이요, 그가 많은 죄악을 벌하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두는 것은 앞으로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 그 형벌을 연기하신다는 뜻이다.

 

8.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생활을 지배한다.

이 목적을 우해서, 선지자는 절망적인 곤경에서 거의 멸망 직전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갑자기, 기적적으로, 또는 예상 밖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고 있다(107편 전체). 이러한 실례를 제시함으로써 선지자는, 우연한 사건으로 간주되는 것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요, 특별히 그의 부성적(父性的)인 사랑을 여러 모양으로 증거해 주는 것임을 보여 준다. 여기서부터 경건한 자들은 기쁨의 근거를 얻게 되고, 불경자(不敬者)와 유기자(遺棄者)들은 그 입을 다물게 된다(42).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최선의 방법으로 조절하시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9. 우리는 머리로 하나님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하신 일을 보고 숙고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의 깊게 탐색해야 할 분이기보다 경배 받으셔야 할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친 호기심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탐구하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에서,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며 친밀히 하시며,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전달하신 그 사역에서 하나님을 숙고해야 하는 것이다(17:27-28; 145:3; 145:5-6; 40:5).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압도당하여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새로워지기 위하여, 그의 사역을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10.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목적

이러한 종류의 지식은 마땅히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자극시킬 뿐만 아니라 내세의 소망을 갖도록 각성시키며,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각 사역에서 특히 그 전체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그림에서처럼 실제로 표현됨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은 그가 하신 사역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 능력의 주요한 목적, 그 가치, 그리고 이에 대하여 우리가 숙고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 안에서 자신의 생명, 지혜, 능력을 보이셨으며, 우리를 위해서 의(), (), 자비를 행사하셨는가를 깊이 생각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경배드리지도 않기 때문에 마침내 미신과 혼란에 빠진다. 11-12)

11. 창조에는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나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역이라는 거울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영원한 왕국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는 그 뚜려한 증거들을 보면서도 점점 더 우둔하여져서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신성(神性)에 대한 개념을 경솔히 파악하고, 즉시 자신의 육적인 망상과 광란에 빠져들어가서 마침내는 공허한 것으로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를 부패하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종교적이며, 가장 신중했던 플라톤 역시 자신이 생각해 낸 둥근 구체(球體)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어 주는 것을 그 임무로 하는 지도적인 인물들도 이렇게 방황하고 비틀거리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 잘못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2. 하나님의 현현은 인간의 미신과 철학자들의 오류에 의해서 질식되었다.

각자의 마음은 미궁(迷宮)과 같아서, 국민마다 여러 가지 허위에 각각 끌려 갔다. 또한 각 사람마다 자신의 신()을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경솔함과 천박함이 무지와 흑암으로 더불어 결합되어, 하나님 대신 자신을 위해서 우상과 환상을 날조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혜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예술과 학문이 잘 세련되면 세련될수록, 그러한 사람은 자기 의견에 더 아름다운 색채를 입혀 위장해 보려고 하는 것이 상례이다.

시모니데스(Simonides)는 폭군 히에로(Hiero)에게서 하나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하여 하루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답변을 칭찬하였다. 다음날 다시 그 폭군이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자, 그는 이틀 동안의 여유를 더 허락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그는 여러 번 날수를 배로 연기하고 나서 마침내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희미해집니다.” 그가 그렇게 희미한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을 중단하였던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 여기서 명백해지는 것은, 인간이 본성으로만 가르침을 받는다면, 확실하고 건전하며 명료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다만 혼란한 원리에 매여, 마침내는 알지 못하는 신을 예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17:23).

 

(인간은 오류를 고집하는 한 핑계할 수 없다. 13-15)

13. 성령은 인간이 고안해 낸 일체의 예배 행위를 거절하신다.

따라서 순수한 종교를 부패케 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자신의 견해에 따라 움직이는 자는 모두가 다 필연적으로 이런 데 빠지게 된다) 유일신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자라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은 참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 들어가실 여지를 만들기 위하여, 전에 이방인들 사이에 신으로 경배 받던 것은 어떠한 신도 어리석고 거짓된 신으로 정죄하는 한편,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계속 번창하던 시온산 외에는 어떠한 하나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2:18, 20).

요컨대, 모든 사람이 큰 죄악에 빠져 있지 않고, 혹은 공공연하게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공통적인 이해에 근거한 순수하고 공인된 종교는 가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예배 형식을 성령이 속된 것으로 거절한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하여 인간의 방법으로 얻어진 의견은, 비록 그것이 항상 막대한 오류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오류의 산실이 되기 때문이며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다(17:23).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땅히 드려야 할 하나님에 대해 율법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자도 모두 죄를 범한 것이라고 하였다(4:22).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다른 사람의 결정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법이다.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한 도시의 관습이나 전통의 여론에 따라는 것은, 경건의 띠로서는 너무도 약하고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자기 자신을 증거하시는 일뿐이다.

*선교에 임함에 있어 중요한 개념! 모든 종교와 그에 따른 전통과 관습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부실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계시에 따른 진리가 들어올 때 사람들은 빛을 발견하게 된다.

 

14.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구조에서 조물주의 영광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등불이 우리를 비춰주고 있지만 그것은 헛될 뿐이다. 비록 다소의 섬광을 발하기는 하나, 그것은 충분한 빛을 방사하기도 전에 질식하여 버리는 것이다. 바울이 히브리서 113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신성이 이와 같은 거울안에서 나타나게 되지만, 하나님의 내적 계시에 의하여 믿음으로 조명(照明) 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세계의 창조에서 명백히 보여졌다고 말한 곳에서도(1:19) 바울은 그러한 현현(顯現)을 인간의 통찰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으로서는 변명할 수 없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 주었다.

 

15.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순수하고 명백한 하나님 지식에 도달할 본래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둔감의 죄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실로 우리의 양심이 나태와 배은망덕을 항상 깨우쳐 주지 못하더라도 무지(無知)를 구실로 내세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의 놀라운 구조 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씨앗을 즉시 부패케 하여, 훌륭하고 완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사실은, 마땅히 그들 자신의 태만에 돌려야 한다. 그러나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찬란하게 보여 주는 그 단순한 증거만으로는 우리가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도 거짓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주에 대한 명상을 통하여 어떤 가벼운 신지식(神知識)을 맛보게 되자, 우리는 즉시 참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대신 머리로 만들어 낸 꿈과 환상을 치켜 세우며 마땅히 참되신 근원에 돌려야 할 의, 지혜, , 권능에 대한 찬양을 그 밖의 어떤 무엇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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