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6장: 안내자 성경, 7장: 성경의 권위, 성령

by 더락 posted Jun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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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레 하는 안내자요 교사로서 필요하다

 

 

1.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성경에서뿐이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혼란한 지식을 우리 마음에서 바로잡고 우리의 우둔함을 쫓아 버리며,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말씀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확실한 표준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두 가지 지식)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되 창조주로서만이 아니라 구속주로서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사람은 누구나 다 이 가장 영광스러운 극장의 관객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눈을 돌려 하나님의 사역을 신중히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러나 보다 더 월등한 유익을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참된 종교의 빛을 받기 위하여는, 마땅히 하늘의 교리에서 그 시초를 찾아야 하며, 그리고 성경의 제자가 되지 않고는 아무도 참되고 건전한 교리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확실히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자신의 탁월한 섭리에 의해 인간을 특별히 고려하셨다.

 

 

3. 성경을 떠나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만일 이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무리 신속하게 달린다 하더라도, 그 진로에서 탈선했기 때문에 목적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딤전6:16) 그 하나님의 광채는, 말씀의 실로 인도받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궁과 같은 것이라고 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길 밖에서 전속력을 다해서 달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절며 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 더 낫다.

 

 

4. 창조의 계시가 전할 수 없는 것을 성경은 전할 수 있다.

다윗이 시편 19편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명상하는 일을 통하여 모든 백성을 자기에게 초청하신 일이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19:1-2),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별한 학교라는 것이다(19:7-8). 시편 29편에서도, 시편 935절에서도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향하여, 그녀의 백성과 다른 모든 백성이 알지 못하는 것에게 예배를 드리되, 유대인만이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말씀하신 것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4:22).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무력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고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필연적으로 공허와 오류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7장 성경은 반드시 성령의 증거로 확증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권위는 확실한 것으로 확립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의 신빙성이 교회의 판단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악랄할 거짓이다.

 

 

1.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교회에서 온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매일같이 하늘로부터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만 자기의 진리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신성(神性)하게 보존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5:39).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하늘로부터 직접 듣는 것처럼, 성경의 기원이 하늘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될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신자들로부터 완전한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2. 교회의 기초는 성경이다.

사도 바울은, 곧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고 증거하였다(2:20). 만일 선지자와 사도의 교훈이 교회의 기초라고 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교회가 존재하기 이전에 벌써 그 권위를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3. 어거스틴의 말을 반증(反證)으로 내세울 수 없다.

어거스틴은 곧 하나님의 영으로 아직 깨우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존경심으로 인해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어 마침내는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힘써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교회의 권위는 복음의 신앙을 준비하게 하는 서곡이 된다는 것이다.

 

 

4. 성령의 증거는 다른 모든 증거보다 강하다.

바로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교리의 저자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고 확신하기 전에는, 교리에 대한 신앙이 수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사실에서 얻게 된다. 만일 우리가 양심을 위하여 최선의 길이 마련되기를 원한다면, 곧 영원히 의심되는 문제로 불안해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또한 가장 작은 강변(强辯)에도 놀라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 그리고 억측에서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근원, 곧 성령의 은밀한 증거에서 우리의 확신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강조하고 논리로 확증한다 해도 자신 스스로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으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라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만일 순결한 눈과 건전한 정신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위엄은 즉시 우리 시야에 나타나서, 우리의 대담한 거절을 억젷여, 우리들이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진정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충분한 응답이 되어준다.

그러나 논쟁을 통해서 성경에 대한 견고한 신앙을 세워보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독신적(瀆神的)인 사람들은 종교를 전적으로 견해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것도 어리석게 혹은 경솔하게 믿지 않기 위해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영감으로 말한 것을 합리적으로 입증해 주기를 원하며 또한 그렇게 요구한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는 일체의 이론을 훨씬 능가한다고 나는 답변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만이 자기 말씀의 합당한 증인이 되시는 것처럼, 그 말씀도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확증되기 전에는, 사람의 마음에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말씀을 선지자들이 충성스럽게 선포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에게 확신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59:21).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조명하시기 전에는, 그들은 영구히 수많은 회의 속에서 흔들려야 한다.

 

 

5. 성경은 자증(自證)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자.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자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증거나 이성(理性)에 종속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성경이 마땅히 지녀야 할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 얻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 자체의 위엄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서 확증되기 전에는, 진정으로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급히 받아들였다가 그것을 엄밀히 조사한 끝에 곧 싫어하는 그와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상(無上)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신하고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무 이론도 필요로 하지 않는 확신이다. 곧 이것은 최고 이성으로 말미암아 입증된 지식이며 실로 이 지식 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떤 이론에서보다 더 안심하고 더 견고하게 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인()치시는 신앙만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여기서 알고 지나가자. 이사야는 회복된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약속하기를,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54:13)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선민에게만, 곧 전체 인류 가운데서 그가 구별해 내신 자들에게만 이 유일한 특권을 주신다. 실로 참된 교리의 시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민첩한 열망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참된 교리의 시작은 합리적 이상과 지식에 대한 열망이 아닌 하나님을 참되게 신앙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자의 수가 적은 것 때문에 마음의 괴로움을 느낄 때마다, 그 반대로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비밀은 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이를 이해할 수 없다”(13:11)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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