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8장: 믿을 수 있는 성경, 9장: 직통계시

by 더락 posted Jun 29,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8장 인간의 이성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성경의 신빙성은 충분히 증명된다.

 

 

(성경이 독특한 권위와 감동성, 그리고 고전성, 1-4)

1. 성경은 인간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다.

성경에 대한 이러한 확실성이 인간의 판단보다 더 높고 더 강하지 않는 한, 논증으로 성경의 권위를 수호한다든가, 교회의 일반적인 동의로 그것을 확립한다든가, 혹은 어떤 다른 무엇의 지원을 받아 확증한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세워지지 않으면 성경의 권위는 항상 불확실한 채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외부적인 것에 의하여 유지되지 아니하고 진리 그 자체가 자증(自證)하게 될 때에 모든 의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데모스테네스나 키케로의 글을 읽어보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라. 그것들은 놀라운 방법으로 독자를 매혹시키며 기쁘게 하고 감동을 주며 또 황홀하게 만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읽은 후에는 이 성경을 읽는 데 전념하라. 그리하면 성경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며 우리 마음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 골수에까지 새겨짐으로써, 그 깊은 인상과 비교할 때에 수사학자(修辭學者)나 철학자들의 힘은 거의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일체의 재능과 미덕을 훨씬 능가하는 이 성경은 신적인 무엇을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2. 결정적인 것은 문체가 아니라 내용이다.

어떤 이는 성경의 표현법이 세련되지 못했기에 권위를 줄 수 없다고 트집을 잡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개종하기 전의 어거스틴을 들 수 있다.

3. 성경의 고전성

성경의 고대성을 보아도 그 권위는 탁월하다. 성경이 세상 초기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면 매우 오래된 것을 다룬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경만큼 고대성을 지닌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4. 모세의 예증이 보여주는 성경의 진실성

모세는 자기 조상이 전적으로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였고, 자기 개인의 이해관계에 대하여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 자기 지파 사람들이 틀림없이 불쾌하게 생각하여 그들로부터 심한 미움까지 받게 될 것도 마다 않은 그였는데 그러한 모세를 의심할 수가 없다. 또한 율법서의 도처에서 우리는 모세가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자임이 분명하다고 하는 충분한 확신을 뒷받침해 주는 많은 증거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적과 예언에 대한 반대설을 논박함. 5-10)

5. 이적은 하나님의 사자(使者)의 권위를 강화시킨다.

모세는 수많은 주목할 만한 이적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이적들은 그가 말한 율법과 공포한 교리에 대한 확증이다(24:18; 34:29; 19:16; 40:34; 16:24; 20:10-11; 17:6; 참조, 고전10:4; 11:9; 16:13; 참조, 고전10:3). 이러한 것들은 모세가 참된 선지자였다고 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6. 모세의 이적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분명히 사기꾼들은 하나같이 대중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명성을 얻으려고 열심히 속임수를 쓴다. 그러나 모세는 어떠했는가? 그는, 자신과 형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뿐 아무것도 아님을 공헌함으로써 일체의 비난의 표적들을 충분히 지워 버렸다(16:7). 그리고 사건 자체를 생각해 본다 해도 도대체 어떤 마술이 백성들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하여 매일같이 하늘에서 그렇게 충분한 만나를 내려오게할 수 있었겠으며 또 사람마다 그 날의 적량을 초과하였을 때에 그 만나를 부패하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불신으로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었겠는가?(16:19-20)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이 거룩한 종을 넘어뜨리려고 소수의 무리들이 음모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때마다 모세가 속임수로 그들의 횡포를 피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나 결과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7. 예언은 인간의 기대와는 다르게 성취된다.

더욱이 족장 야곱을 통하여 유다 지파에 최우위를 돌리게 한 것이 예언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 예언을 최초로 말한 모세는 그가 이 책을 기록한 지 400년이 지났지만 아직 유다 지파의 왕권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세는 희미하기는 하지만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에 대하여 말한 바 있는데(49:10), 이 예언은 그 후 2천년이 지나서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이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말하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8.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들을 확증하셨다.

이사야는 고레스라는 이름을 들면서(45:1), 갈대아 사람들이 이 고레스에게 항복하며 그로 인하여 백성들이 자유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자가 그렇게 예언한 후로부터 고레스가 태어나기까지는 100년 이상이 경과하였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죽은 지 거의 100년이 지나서야 고레스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레스라는 사람이 나타나 바벨론과 싸워 그 강대한 왕국을 정복하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문자적인 수식도 없이 솔직하게 말한 이 이야기는, 이사야가 사람의 추측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확실한 말씀으로 하였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해 주지 않는가? 그러한 증거들에 의해 예언자들의 권위가 확증되었다는 것과 그들 자신이 주장한 바가 바로 그들의 말의 신빙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실제로 성취되었다는 것, 이러한 사실들을 부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9. 율법의 전승(傳承)

모세의 율법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적적으로 보존되었다. 비록 그 율법이 제사장들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잠시 파묻혀 있었으나, 경건한 왕 요시야가 이를 발견한 후부터는(왕하22:8; 대하34:15) 대대로 계속해서 계승되어 왔다. 이 모든 거룩한 저자들에 대하여 총괄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의 저작은 오직 한 길을 통하여, 곧 손에서 손으로 그 후손에게 전승되었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10.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자를 이적적으로 보존하였다.

안티오쿠스(Antiochus)가 모든 책을 다 불태우라고 명하였는데 지금 우리가 가진 사본들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겠느냐고 말한다(마카비전서 1:56-57). 그러나 그 사본들이 어떤 공장에서 그처럼 빨리 위조될 수 있었겠는가라고 나는 반문하고 싶다. 왜냐하면, 박해가 가라앉자 즉시 그 책들이 나타났으며, 또한 그 교리에 대하여 교육을 받고 이를 익숙히 잘 알고 있던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아무런 논쟁도 없이 그 책들이 바로 성경이라고 인정하였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적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안티오쿠스의 그 피비린내 나는 포고령 속에서 언약의 서판들을 건져 내셨다는 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거듭되는 재난으로 짓밟힘을 받고 황폐해지며 마침내는 거의 멸절 상태에 이르는 그 속에서도 이 기록들이 본래대로 안전하게 보존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다.

 

 

11. 신약성경의 단순성과 천적(天的) 특성 및 그 권위

다음으로, 신약성경으로 넘어오게 되면 그 진리가 얼마나 튼튼한 지주(支柱)로 유지되어 있는가를 알게 된다. 마태는 이전에는 책상 앞에 앉아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던 사람이며, 베드로와 요한은 고깃배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이들은 한결같이 소박하고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하나도 이 세상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이전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잔인하고 살기가 등등한 원수였으나 이제는 회심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갑작스럽고 뜻하지 않았던 이 변화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에 의하여 지난날 그가 반대하던 교리를 변호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전에는 일반 대중에게 비천한 자로 멸시를 받던 그들이 갑자기 하늘나라의 신비를 장엄하게 강론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성령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사실 그 자체는 소리 높여 부르짖을 것이다.

 

 

(교회의 동의와 순교자들의 충성, 12-13)

12. 성경에 대한 교회의 불변적인 증거

사탄은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전세계와 함께 성경을 억압, 파괴하며, 혹은 인간의 기억에서 이를 전적으로 제거, 말살시키고자 노력하여 왔다. 세상의 모든 세력들이 성경을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스스로를 무장하였으나, 그러한 노력은 모두 연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만일 성경이 인간의 보호에만 의존했다면 사방으로부터의 강력한 공격들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사실로 말미암아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반항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자체의 힘으로 지금까지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13. 순교자들은 성경의 교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성경이 많은 증인들의 피로 인쳐졌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증명으로서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특히 그들이 죽기까지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되 잘못된 정신의 소유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이를 지나친 광신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확고하고 견고하며 건전한 열심을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것은 더욱 명백해진다.

성부께서 자신의 위엄을 성경에 나타내시며, 성경의 존귀성을 모든 논쟁의 영역에서 지키시지 않는 한, 그들 스스로 견고한 신앙을 마련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확실성이 성령의 내적 확신 위에 세워질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을 궁극적으로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불신자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려는 자들은 매우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아니고는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이 경고한 바, 사람이 그렇게 큰 문제를 이해하기 우해서는 경건과 마음의 평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올바른 것이다.

 

 

 

 

 

9장 성경을 떠나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한다.

 

 

1. 광신자들의 성령에 대한 잘못된 관심

더욱이 성경을 떠나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달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도(誤導) 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광란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성경의 교리를 감히 유치하고 천한 것이라고 멸시할 만큼 그들을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그 영이란 도대체 어떤 영인가라고 나는 묻고 싶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921절을 통해서 말한다. 곧 성령에 의해서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도 지배받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예언자들이 침범할 수 없도록 결속시켜 놓은 것들을 이 악한 자들은 가증하고 참람되게 분리시켜 놓았다. 그리고 바울은 삼층천에 이끌려 다녀 온 후에도 계속하여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리를 연구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후12:2). 또한 그는 훌륭한 교사 디모데에게도 읽는 것에 착념하라고 권고하였다(딤전4:13).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성경에 대한 찬사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딤후3:16-17)

주께서는 어떤 영을 약속하셨는가? 실로 그 영은 자의로 말하지 않는영으로서 예수님께서 친히 과거에 말씀하신 것들을 저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시며 암시해 주시는 영인 것이다(16:13).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무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용인된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인쳐 주는 데 있는 것이다.

 

 

2. 성령은 성경에 의해 인정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무슨 유익이나 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성경에 유의해야만 한다는 것을 여기서 쉽게 이해하게 된다(벧후1:19).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는 제쳐 두고 다른 교리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영이 있다고 하면 이는 마땅히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의심을 받아야 한다(1:6-9). 우리로서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의 영이 성령의 이름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성령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형상대로 인식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그는 변하실 수도, 자신과 다를 수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분명히 그는 성경 안에서 일단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하실 것이다.

 

 

3.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성령께서는 성경에서 보여 주신 자신의 진리와 아주 굳게 결속하여 계시므로 그 말씀이 당연한 존경과 위엄을 받을 때에만 비로소 성령이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면 즉시 말씀을 폐기할 생각으로 일시적인 전시(展示)를 위해 자신의 말씀을 인류에게 보이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동일한 성령을 보내셔서 그 권능으로 말씀을 나누어 주신 것은, 그 말씀에 대한 효과적인 확증으로 자신의 일을 완성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두 제자의 마음을 열어 주셨는데(24:27, 45), 이는 그들이 성경을 거절하고 자신의 지혜를 믿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도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20)라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권면할 때에도, 그는 말씀을 떠난 공허한 사색(思索)으로 그들을 이끌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언이 멸시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즉시 덧붙여 말하였다. 이 사실을 통해, 예언이 경시될 때에 성령의 빛이 소멸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암시하였던 것이다


Articles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