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척은 여러 번 해 봤다. 아이를 키울 때, 새벽에 아이 울음소리에 깼어도, 엄마 일어나라고 나를 흔들어도 끝까지 잠든 척을 했다. 아이가 제풀에 지쳐서 잠들기를 기다렸다. 인생은 연기라는 말을 그때 깨쳤나 보다.
지난주 나는 보신각 앞에 누웠다. 누워서 약 2분 동안 죽은 척을 했다. 다이인(Die-in·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행동)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바닥에 누워본 것도 처음이지만 게다가 예배를 드리던 중에 누워서 죽은 척을 하다니, 정말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강남역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일면식도 모르는 남성에게 한 여성이 살해당한 지 10년이 됐다. 그 죽음을 비롯해 여성 혐오 범죄로 사라진 이들을 추모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예배 중에 사이렌이 울렸고 200여명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맨땅에 드러누웠다.
죽음에 대해 묵상한 적은 종종 있었어도 그 죽음은 자연사 혹은 존엄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죽임당해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살해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평생 드려본 적이 없었구나. 내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이 땅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죽은 척이 가르쳐줬다.
정혜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