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분꽃 씨앗
몇 주 전부터 아파트단지 마을버스 정류장 옆 화단에 분꽃이 피기 시작했다. 노랑과 분홍 꽃잎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앙증맞은 봉오리를 열었다. 한데 날이 점점 가물더니 꽃잎이 시들다 못해 타들어갔다. 무덥다는 말로 부족한 열기를 피하느라 한동안 외출을 자제했다. 비가 내린 뒤 다시 화단을 둘러보았다. 꽃봉오리가 떨어지고 까만 씨가 맺혀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 없이 녹아내린 건 분꽃만이 아니었다. 잠시라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피조 세계의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경쟁이 기본값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예수님은 나에게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셨다. 예수님께 의지해 커다란 경쟁의 바퀴를 돌리고 또 돌리면서 안도했다. 이 바퀴에 깔려 죽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도의 내용을 바꾸려 한다. 더는 씨앗을 맺지 못하는 분꽃을 보며 삶의 방식을 전환하려 한다. 그 방식은 거창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 분만 아신다면, 십자가에 달리는 충격적인 방식을 선택하신 그분만 아실 수 있다면…. 남은 생은 지금보다 덜 폭력적이겠지. 분꽃의 여린 꽃잎처럼 부드럽겠지.
정혜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