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하나님은 우상과 구별되며 하나님만이 완전한 예배를 받으실 수 있다.
1. 참 종교는 우리를 유일신이신 하나님께 결속시킨다.
경건이란 것은, 확고한 기반 위에 서기 위해서 적절한 한계 안에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신이라는 말도 역시 규정된 방법과 질서에 만족하지 않고 무익한 수많은 공허한 것들을 축적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진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의(語義)를 생각하는 일을 그만 두더라도, 모든 시대에서 종교가 언제나 허위와 오류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은 일치된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합리적인 예배를 제정하셨다. 하나님은 율법에 다음 두 가지를 포함시키셨다. 첫째는 신자들을 자신에게 종속시켜 자신이 그들의 유일한 율법 수여자가 되게 하신 것이요, 둘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당연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규범을 제정하신 것이다. 이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한 굴레가 인간에게 씌워져 저들로 하여금 악한 예배에 빠지지 못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미신은 하나님에게 최고의 지위를 허용하면서도, 수다한 저급신(低級神)들로 둘러싸고는 이 저급신들 가운데서 그 기능을 행사하게 한다. 이렇게 은밀하게 또는 교활한 방법으로 해서 전적으로 한 분에게만 있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은 여럿으로 조각이 나버리게 되었다.
2. 차이점이 없는 구별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소위 라트리아(latria)와 둘리아(dulia)의 구별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천사와 사자(死者)에게 드려도 아무 죄가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고안된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주의자들의 성자(聖者)에게 돌리는 영광은 실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3. 형상 예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이다.
요한이 천사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로 천사의 책망을 받은 일이 있는데(계 19:10, 22:8~9),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영광을 천사에게 드리고자 하였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종교와 결합된 경건한 행위는 어떤 것이라도 신적인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지 않고 천사에게 꿇어 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종교가 일단 예배 행위와 결합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고넬료에게서 볼 수 있다(행 10:25). 그의 경건은 하나님 이외의 존재에게 최상의 경외를 드릴 만큼 그렇게 미숙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베드로 앞에 “엎드리어 절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 대신에 그를 예배하려는 의도에서 한 것이 아님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넬료의 그러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금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인간에 대한 예배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속하는 것을 무차별하게 피조물에게 옮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우리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그의 영광을 티끌만큼이라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과, 그에게 속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