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롤링배너1번
한인희의 책 산책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5. 성령의 신격에 대한 명백한 증거

실로 성경은 성령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이라고 지칭하기를 회피하지 않는다(고전 3:16-17, 6:19 고후 6:16). 탁월한 의미에서 모든 예언의 저자이신 성령이야말로 참되신 여호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5:4; 6:9; 28:25-26; 벧후 1:21). 또한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완함을 인하여 노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이사야는,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63:10)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12:32; 3:29; 12:10), 이 말씀은 분명히 성령의 신적 위엄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며, 그 위엄을 범하고 훼손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삼위의 구별과 일체성. 16-20)

16. 하나님의 하나되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28:19)라고 하신 이 엄숙한 명령에서 주님께서는 신앙의 완전한 빛이 현현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셨다는 사실에는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확히 말해서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아주 명백하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아주 명백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한 하나님으로 알려진 삼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세례는 신앙의 성례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유일성을 우리에게 확증해 준다. 또한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시는 한 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를 떠나서는 세례가 허락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을 때, 이 명령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 신앙으로 믿어야 한다는 말씀이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증거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며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확고한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과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17. 삼 위

한편, 성경은 성부와 말씀,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구별한다. 실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말은 실제적인 구별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별이지 분할이 아니다. 성자가 성부와 구별되는 특성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말씀이 성부와 다른 분이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실 수 없으며, 따라서 말씀이 성부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면 성부와 더불어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자는 자신을 성부와 구별하여,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5:32, 8:16; 참조, 1:3; 11:3)라고 말씀하셨다. 말씀과 구별되지 않고서는 성부는 이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부는 죽지도 아니하시고, 부활도 아니하셨고 다만 성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이러한 구별도 성육신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에 앞서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1:18)이셨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성자가 인성(人性)을 취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기 전에는 아버지의 품속에 들어가지 않으셨다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벌써 그 이전에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으며, 자신의 영광을 아버지와 더불어 누리셨던 것이다(17:5).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가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14:16) 또 다른 곳에서도 자주 그렇게 말씀하신 때처럼 성령을 다른 분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성령이 자기와 구별된다는 것을 암시하셨다.

 

18.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차이점

성경이 말하는 구별은 다음과 같다. 곧 성부는 일의 시초가 되시고 만물의 기초와 원천이 되시며, 성자는 지혜요 계획이시며 만물을 질서 있게 배열하시는 분이라고, 성령님은 그와 같은 모든 행동의 능력과 효력이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성자는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생되며 동시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생된다고 말한다. 로마서 8장에서 더 분명하게 진술된다. 여기서는 동일한 영이 아무 차별 없이 때로는 그리스도의 영”(9)으로, 때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11)으로 불리고 있다. 베드로도 역시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다고 증거하였으며(벧후 1:21; 벧전1:11), 또한 성경은 자주 성령을 성부 하나님의 영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19.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

이러한 구별은 하나님의 가장 단순한 단일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자는 성부와 똑같은 영을 소유하시기 때문에, 성자가 성부와 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은 성부, 성자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해 준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하여는 하나님이라고 불리며 성부와의 관계에서 생각될 때는 성자라고 불린다. 그리고 성부가 자신에 대하여는 하나님이라고 불리고 성자와의 관계에서 생각될 때는 성부라고 불린다. 성자에 대하여 성부라고 불리는 한 그는 성자가 아니며, 성부에 대하여 성자라고 불리는 한 또한 그는 성부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아버지라고 불린 분과 자신에 대하여 아들이라고 불린 분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어거스틴은 그의 삼위일체론(On the Trinity) 5권 전()권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였다. 숭고한 신비속을 교묘하게 파고들어가 많은 공허한 사변(思辨)의 주위를 배회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어거스틴이 진술한 그 관계에 만족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다.

 

20. 삼위일체 하나님

그러므로 진심으로 절제를 사랑하며 믿음의 분량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알아두면 유익한 것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형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자.

즉 우리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이 하나님의 명칭은 유일하시며 단일하신 본질로 이해된다는 것이며, 이 본질 안에는 세 인격 또는 세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특수화함 없이 언급될 때, 이 명칭은 성부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자와 성령 또한 지칭한다. 그러나 성자가 성부와 연합될 때 양자는 상호 관계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위()들의 사이를 구별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각 위의 특성에는 일정한 순사가 있다. 예를 들면, 성부에게 시작과 근원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 혹은 성부와 성령이 동시에 언급될 때,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언제나 성부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이와 같이 하여 본질의 단일성이 보존되고 그 정당한 순서가 유지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조금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여호와라고 증거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사도들이 주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항상 본질의 단일성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성자를 가리켜 성부와 다른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증스러운 신성 모독죄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단일 명칭은 어떠한 상관 관계도 허락지 않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이런 하나님이다 혹은 저런 하나님이다 하는 식으로 불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데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떤 특별한 설명이 없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것은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밝히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고후 12:8).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그리스도의 응답을 받은 바울은 즉시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런데 여기서의 라는 말은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이 주라는 말을 중보자의 인격에만 국한시킨다는 것은 어리석고 유치한 일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기도에서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 절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랍어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사도들이 큐리오스”(χριος, )라는 말을 보통 여호와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그러한 실례를 찾는다면, 바울은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21; 2:32)고 하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의미에서 주님께 기도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는 친히 하나님을 온전히 ()”(4:24)이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 본질은 영적이시며, 이 영적인 사실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명백하게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이라고 불리고 있음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이 전() 본질(本質)의 한 실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영이라고 불리고 있음을 또한 보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이단에 대한 논박, 21-29)

21. 모든 이단의 근거: 모두에 대한 경고

더욱이 사탄은 우리의 신앙을 그 근본으로부터 뒤집어 엎기 위해, 부분적으로는 성자와 성령의 신적 본질에 관하여, 부분적으로는 위()의 구별에 대하여 언제나 커다란 분쟁을 선동하여 왔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우리의 언어 그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허락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외에는 어떠한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 외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을 것,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 하겠다. 그러나 한 신성 안에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이 파악하기 힘들다고 하여 그것이 어떤 사람들의 이해력에 기대 이상의 어려움과 고통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인간의 마음은 호기심을 충족시킬 때에는 미궁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저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자.

 

22. 세르베투스의 반()삼위일체론

삼위일체라는 말은, 세르베투스에게 있어서는 몹시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삼위일체론자를 가리켜 보통 무신론자라고 불렀다. 실로 이것은 그의 사변(思辨)의 전체였다. , 하나님의 본질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고 하면 하나님은 셋으로 나누어진 것이 되며,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상치하기 때문에, 공상적인 삼부조(三部組)가 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위란 하나님의 본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표현해 주는 어떤 외적인 관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실재(實在)를 환상물로 바꾸어 이를 변형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새로운 우연적인 특성들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거짓되게 첨가하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저주받아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보통 피조물과 무분별하게 혼합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본질 안에는 여러 부분과 구분이 있는데, 이들 각 부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그는 공공연하게 주장하였다. 특히, 신자들의 영혼은 하나님과 동질적이며 영원히 하나님과 공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게까지도 실질적인 신격을 부여하였다.

 

23.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이들은 성부만이 진실로 또한 당연히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지으시고 이들에게 자신의 신격을 주입하셨다고 해석하였다. 성부만이 유일한 본질의 수여자이시며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 구별되신다고 주장하였다. 즉 성부만이 하나님이시라고 결론을 내렸다.

저들은, 만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그를 한 위()의 아들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하여 반대한다. 나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모두 참이라고 답변한다. , 그가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이 만세 전에 벌써 성부에게서 나셨기 때문이다(참조, 고전 2:7). 그리고, 더욱이 명료함을 기하기 위하여 우리는 위()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여기서 무조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부와 동등한 말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일 성부 이외에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확실히 성자를 이 하나님의 품위에서 끌어 내리는 것이 될 것이다.

 

24.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성부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그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만세 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영원하신 말씀이었다는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 중보자의 위격과 직책을 취하셨다는 사실에서도 그러하다. 저들은 뻔뻔스럽게도 성자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제거하고 있으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싶다. 곧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고 성자께서 말씀하셨을 때( 19:17), 그가 자신에게서 선을 박탈하셨느냐는 점이다. 나는 성자의 인성(人性) 속에 있는 선은 무엇이나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저들이 반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성자의 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선한 것이냐 선하지 않은 것이냐 하는 점이다. 만일 이 말씀이 선하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저들의 불경건은 저들 자신의 유죄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그것을 시인한다면 저들은 또한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 생각할 때는 그리스도께서 선한 자의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신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의 주장을 한층 더 확증시켜 준다. 확실히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속하는 칭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일반적인 화법에 따라 선한 자로 인사를 받으셨을 때 그 거짓된 영광을 거절하시고, 자신의 선은 신적인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부 안에 있는 하나님이었다고 다른 구실을 내세웠지만, 그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한 모세의 글에서 우리는 위()의 구별을 짓는데, 이에 대하여 많은 비난자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만일 한 하나님 안에 위가 여럿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면, 모세의 이 언급이야말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 되겠는가를 경건한 독자들은 알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의 권능과 명령할 수 있는 권위가 성부, 성자, 성령에게 공통되게 속한다는 것을 저들이 인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 안에서 그와 같이 말씀하지 않으시고 외부의 다른 행동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될 것이다.

 

25. 삼위는 공통적으로 신성을 소유한다.

성부는 순서상 처음이시며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지혜를 낳으셨기 때문에, 모든 신성의 기초가 되시며 원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무한정적으로 볼 때에 발생하신 분이 아니시며, 성부 또한 위()라는 점에서는 발생된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위를 본질에서 분리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삼위를 구별하되 그 각자가 본질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한다. 만일 위가 본질에서 분리되었다고 하면 유일신이 그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위들의 삼위일체가 아니라 제신(諸神)의 삼위일체가 될 것이다.

본질이 삼위일체의 부분 혹은 한 성원(成員)으로서의 구별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위들은 본질 없이 혹은 본질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성부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부가 될 수 없으며 성자 또한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격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존하신다고 우리는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자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존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이요, 그의 위에 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실로 그가 성자인 이상, 우리는 그가 성부로부터 오셨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그의 본질에는 기원이 없으나 그의 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

 

26. 성육신하신 말씀이 성부에게 예속된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저들은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나는 한 위와 다른 위를 비교할 때,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사용되지 않고 신격의 근원이신 성부에게 한정된다고 대답했었다. 물론 이것은 본질의 부여와 관련시켜서가 아니고, 순서의 원리에 의해서 그렇게 사용된다.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 하신 말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중보자의 위격으로 말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 위치를 취하셨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 때문에 자신의 위엄이 감소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를 비웠다고는 하지만(2:7) 성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이 이 세상에 대하여 감춰졌을 뿐 전혀 상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인격으로 하나님께 말씀하실 때에는 언제나 자기에게도 속하는 그 신격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명칭하에 두셨던 것이라고 우리는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14:28; 참조, 16:7, 20:17)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영원한 본질과 관련하여 자신이 성부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제 2차적인 신격을 자신에게 돌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어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성부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서 성부를 보다 높은 위치에 계시는 분으로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빛나는 광채의 그 완전함이, 육신을 입으신 자신에게서 볼 수 있었던 영광에 비해 훨씬 뛰어나 있음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신격이 영원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한다고 할 것 같으면, 성부, 성자에게 공통된 하나님의 유일하신 본질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7. 반대자들은 이레니우스를 잘못 인용한다.

이레니우스의 저서 제 3권 제 6장을 읽으면, 그는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한다. “성경에서 절대적으로 또는 아무 구별 없이 하나님이라고 불리신 분은 참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야말로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라고 불리셨다.” 또한 이외에 다른 곳에서도,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성자와 성부를 다같이 하나님으로 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3권 제 9). 후에 그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그 순종과 관련하여, 만물의 주이시며 왕이시오 하나님이시며 심판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만물의 하나님이신 자신에게서 그와 같은 권능을 받으셨는가를 진술한다(3권 제 12). 다시 조금 후에 성자는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모세의 손을 통하여 율법을 주셨고 족장들에게 나타나셨던 분이라고 그는 단정하고 있다. 그런데 성부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이 이레니우스의 주장이라고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나는 그에게 그리스도는 유일하시고 동일하시며 또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3:3)라고 한 하바국의 예언의 말씀이 성자에게 적용된다는 이레니우스의 가르침을 제시할 것이다(3권 제 18, 23).

 

28. 터툴리안을 인용하는 것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되 그의 말씀은 분배 혹은 섭리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 터툴리안의 견해인데, 곧 하나님은 본체의 단일성에 있어서 유일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단일성은 분배의 신비에 의해 삼위로 배열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위가 존재하되 그것은 상태에 있어서가 아니라 품위에 있어서 그러하고, 본체에 있어서가 아니라 형식이 있어서 그러하며, 권능에 있어서가 아니라 현현에 있어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는 프락세아스(Praxeas)를 반대하여, 하나님은 삼위로 구별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한 분 이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며 그의 단일성이 분할되는 것도 아니라고 논쟁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한 존재가 아닌 한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프락세아스가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터툴리안은 이러한 구별에 대해 강력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장 사악한 프락세아스여, 그대는 이미 불리고 있는 이름 외에 또 얼마나 많은 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금 후에 그는 다시, “저들이 성부와 성자를 그 이름과 위에 따라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하였다.

 

29. 교회의 인정을 받은 학자들은 모두 삼위일체 교리를 확증하였다.

고대 교회의 저서들을 열심히 비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레니우스의 사상이 그를 계승한 사람들의 사상과 조금도 다랄 바가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순교자 져스틴과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힐라리는 이와 똑같은 주장을 하였으며, 영원성이 성부 안에 있다고 한층 더 예리하게 역설하였다. 실로 고대인들이 서로 일치하였다는 점을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명백하게 알게 된다. 즉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Arius)는 어떤 인정된 저자의 권위를 빙자하여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으며, 희랍 교부나 라틴 교부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자기와 이전 학자들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변명하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하여”(Christian Doctrine)라는 저서 제 1권에서 성부 안에 단일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성부는 아무에게서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모든 신격의 시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그는 하나님의 명칭이 특별히 성부에게 돌려진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 시작이 성자로부터 나오지 않는 한 하나님의 단일성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제어하고, 필요 이상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논쟁들을 분별 없이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이 교리의 전체 내용은 충실하게 설명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무분별하게 사변(思辨)을 즐기는 자들에게는 조금도 만족을 주지 못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성부가 항상 발생하는가 아닌가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논쟁할 필요가 있겠는가? 실로 발생의 계속적인 행위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영원부터 삼위가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인희의 책요약

한인희의 책요약

  1. 죄 죽임-존 오웬(5). 5부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1)

  2. 죄 죽임-존 오웬. 4부 죄 죽임을 위한 일반적 지침

  3. 죄 죽임-존 오웬. 3부 죄 죽임의 본질

  4. 죄 죽임-존 오웬. 2부 죄 죽임의 의무

  5. 죄 죽임-존 오웬. 1부 죄 죽임

  6. 죄 죽임-존 오웬. 해제

  7.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개혁신학(1)

  8.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개혁신학(2)

  9. No Image 20Sep
    by 더락
    2022/09/20 by 더락
    Views 97 

    기독교 강요- 2권: 4장. 하나님의 사역과 심정

  10. No Image 16Sep
    by 더락
    2022/09/16 by 더락
    Views 115 

    기독교 강요- 2권: 3장 중생.

  11. No Image 07Sep
    by 더락
    2022/09/07 by 더락
    Views 124 

    기독교 강요- 2권: 2장 노예의지. 18~27항

  12. No Image 07Sep
    by 더락
    2022/09/07 by 더락
    Views 99 

    기독교 강요- 2권: 2장 노예의지. 1~17항

  13. No Image 27Aug
    by 더락
    2022/08/27 by 더락
    Views 103 

    기독교 강요- 2권: 복음이란?/ 1장 원죄

  14. No Image 12Aug
    by 더락
    2022/08/12 by 더락
    Views 102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8장 유기된 자에 대한 섭리

  15. No Image 09Aug
    by 더락
    2022/08/09 by 더락
    Views 103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7장 섭리적 신앙

  16. No Image 03Aug
    by 더락
    2022/08/03 by 더락
    Views 115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6장 하나님의 섭리

  17. No Image 26Jul
    by 더락
    2022/07/26 by 더락
    Views 203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5장 창조 시 인간성

  18. No Image 20Jul
    by 더락
    2022/07/20 by 더락
    Views 119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4장 천사와 마귀(2)

  19. No Image 20Jul
    by 더락
    2022/07/20 by 더락
    Views 113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4장 천사와 마귀(1)

  20. No Image 12Jul
    by 더락
    2022/07/12 by 더락
    Views 106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3장 삼위일체 하나님(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순위 닉네임 포인트
1위 하울림 64150점
2위 예배자 50913점
3위 엔돌핀 41405점
4위 로이 39035점
5위 하늘향기 27407점
6위 돌아온유다 18365점
7위 주정주정 12540점
8위 챨스 11665점
9위 산세리프 8735점
10위 동산위에 7745점


오늘ㅤ
353 / 455
어제ㅤ
2,800 / 4,749
전체ㅤ
492,115 / 1,841,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