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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희의 책 산책
2022.03.11 09:26

존 스토트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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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 , 그레그 샤프 지음 | 박지우 옮김 | IVP | 2016년 12월 13일 출간

 

-책 내용 요약-

 

1장 설교에 대한 도전

설교는 기독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말씀을 사용하기로 선택하셨다는 진리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우리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은 메시지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권위에 대한 적개심

인류가 제도로부터 더 많은 자유를 획득하면서 적개심의 표현은 권위에서 사상으로 옮겨왔습니다. 도전을 받지 않은 사상이 없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고, 그 견해에 대해 설교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설교를 청자에 대한 폭력 행위라고까지 말합니다.

 

전자혁명

전자 시대가 되면서설교자들은 유명 설교자의 설교 스타일과 기법이 자신의 개성과 상황, 은사와 어울리는지 생각해 보지 않고 그들을 모방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인터넷에서 내려 받은 설교문을 그대로 읽거나 유명 설교자의 설교를 화면에 띄워 회중이 시청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 방법은 설교자와 회중 사이에 존재해야 할 소통을 단절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전송되는 설교는 지금 이곳의 청중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교회의 자신감 상실

설교는 전령 또는 포고관으로서 공적으로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담긴 분명한 메시지가 없으면 설교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에 바로 이것이 결여되어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끈기 있게 기도하면서 진리의 성령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2장 설교의 신학적 토대

설교의 비결은 어떤 기술을 온전히 익히는가가 아니라 어떤 확신에 온전히 지배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학이 방법론보다 중요합니다. 올바른 신학이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데 필요한 모든 기본적 통찰을 소유한 것이고, 그 일을 성실히 행하도록 자신을 북돋아 줄 모든 동기도 소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가 우리가 어떤 설교를 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자신을 알리기 원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려고 행동하신 것,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기 행동을 설명하신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신하지 못한다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음을 깨달은 후에는 침묵할 수 없고 침묵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

설교자의 주된 사명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 나름의 21세기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자의 사명은 사도들의 목격담을 통하여 주어진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권위 있는 증언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감(inspiration)”은 받아쓰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입에 그분의 말씀을 주셨는데, 이때 그들의 생각과 말이 온전히 그들의 것이면서 동시에 그분의 것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영감은 그들의 역사 연구나 지성의 자유로운 사용과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인간 저자와 신적 저자를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의 인간적 요소를 인정한다는 것은 성경을 문학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주변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청중이 그 특징 전부를 파악하고 하나님이 거기 두신 크고 작은 길을 따라 가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각 세대를 위한 현재의 메시지입니다. ‘율법성경은 고대의 책인데 어떻게 이것들이 지금도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는 점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말과 행동이 결합되어 있습니다(33:9). 그러므로 참된 설교는 진정한 행동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품은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선포의 결과를 예상해야 합니다. 회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확신

교회를 살아 있게 하고, 교회를 인도하고 거룩하게 하며, 개혁하고 갱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교회를 말씀으로 통치하시고 말씀으로 먹이십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성실히 선포하면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마음속에서 살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으로 비전을 주실 것입니다. 이 비전이 없으면 교회는 소멸합니다.

 

목회직에 대한 확신

신약성경은 교회 지도자를 감독 또는 장로라고 부릅니다(1:5). 교회 지도자는 더 이상 제물을 드리는 구약의 제사장이 아니라 주로 성도를 돌보는 일, 양떼를 먹이는 일을 책임지는 목회자 혹은 목자입니다(20:28).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인다는 것은 그분의 교회를 가르친다는 뜻이며, 그렇기에 장로가 되기 위한 요건에 사도적 신앙에 충실할 것과 가르치는 은사가 모두 포함된 것입니다(1:9; 딤전3:2). 이 가르침을 군림하는 자세로 전해서 회중이 진리의 성령보다 장로에게 더 의존하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23:8).

 

설교에 대한 확신

목회자는 어떤 설교를 해야 할까요? 모든 참된 기독교 설교는 강해 설교여야 합니다. ‘강해가 가리키는 것은 설교의 방식이라기보다 설교의 내용입니다. 성경을 강해한다는 것은 본문 안에 있는 것을 꺼내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강해자는 닫힌 것 같은 부분을 열고, 혼동되는 것을 분명히 하며, 얽힌 것과 단단히 묶인 것을 풉니다. 본문이 길든 짧든 강해자는 본문이 분명하고 정확하고 적실하게, 가감이나 왜곡 없이 그 자체의 메시지를 말하도록 본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강해 설교를 할 때 성경 본문은 그것과 아주 다른 주제를 다루는 설교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설교의 내용과 논조, 목적을 규정하고 좌우하는 설교의 주인입니다.

 

 

 

3장 다리를 놓는 설교

설교자는 메시지를 지어내면 안 됩니다. 메시지는 설교자에게 맡겨졌습니다. 전령이 알릴 기쁜 소식이 주어졌고, 농부가 뿌릴 좋은 씨앗이 주어졌으며, 청지기가 나누어 줄 좋은 양식이 주어졌고, 목자의 양 떼에게는 좋은 목초지가 허락되었습니다. 대사는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자국의 방침을 제시하며, 일꾼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위해 길을 냅니다. 신약성경의 이 모든 그림에서 설교자는 다른 누군가의 권위 아래 있는 종이고, 다른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설교자의 임무는 이 메시지를 상황과 연결 짓고, 듣는 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입니다.

 

문화적 간극 건너기

설교는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가 성경에서 나와 오늘날 사람들의 삶으로 흘러들어 가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곡을 다리로 이으려는 의지가 확고한 그리스도인 전달자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희생시키거나 시대적 적실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불변하는 말씀을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계와 연결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스도 설교하기

우리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합니다. 참된 지혜를 찾고 싶다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싶다면, 인격이 성숙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지명하여 그분의 백성을 만족시키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윤리 설교하기

설교자는 개인 영역을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신앙이 도덕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뤄야 합니다. 우리는 담배를 피울지, 문신을 새길지, 또는 피어싱을 할지 결정할 때 성령의 전인 몸에 대한 우리의 소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 이혼, 재혼, 동성 간의 혼인 관계에 관한 공적 논의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정의, 빈곤, 기아, 문맹, 질병, 환경오염, 자연 자원 보존 실패, 낙태, 자비로운 살인 혹은 안락사, 사형제도, 비인간적 기술주의, 관료제, 실업, 민족주의와 종족주의, 폭력과 혁명, 군비경쟁, 핵 확산, 생물학전과 테러의 위협, 범죄 증가와 범죄자에 대한 우리의 책임, 인종주의 등도 다루어야 합니다. 목록은 끝이 없어보입니다. 강단에서 이런 주제로 설교하는 것을 어찌 금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 주제에 집중한다고 이런 주제의 설교를 금하면 하나님이 오직 영적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시고 자기 피조물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시사하게 됩니다. 영적 문제만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행위입니다.

 

 

 

4장 연구로의 부르심

훌륭한 교사들은 평생을 학생으로 삽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한 설교자의 말을 소개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을 서길 시간이 단 3년만 주어진다면 나는 그중 2년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신선함고 생기는 연구에서 나옵니다.

 

성경 연구

설교자로서 우리는 우선 말씀을 설교하도록 부름받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 하나입니다. 성경을 가치 있게 여길수록 우리의 성경 연구는 주의 깊고 성실해집니다. 성경연구는 포괄적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부분만 읽는 것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구절에 국한하거나, 핵심구절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성경을 연구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성경 전체를 속속들이 알 수 있을까요? 첫걸음을 내딛기에 좋은 도구로 맥체인 성경 읽기표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년 성경을 통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 계획대로 하면 1년에 구약은 한 번, 신약은 두 번 읽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진정으로 갈망해야 하고 말씀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말씀이 주는 도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책뿐 아니라 오래된 책, 특히 지난 세월 동안 검증된 기독교 고전을 읽는 것이 현명합니다.

 

현대 세계

성경과 신학은 설교에 핵심 기초를 제공하지만 현대사회를 연구하지 않으면 우리는 협곡의 한편에 지독하게 고립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연구는 책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됩니다. 최고의 설교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섬기는 성도와 지역 사람들을 아는 부지런한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들이 말하게끔 해야 합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 많이 알겠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집과 가정생활, 직업, 전문 분야와 관심 분야에 대해서 말하도록 권해야 합니다. 이에 더해 우리는 신문과 시사 잡지를 읽고, 인터넷이나 라디오 뉴스의 심층 보도를 지켜보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가능하면 회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독서 모임 및 전문가 집단

저는 이 방식을 추천합니다. 거의 모든 교회 공동체에는 때때로 목회자와 만나 교회와 세상, 기독교적 사고와 비기독교적 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과 경쟁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논의할 수 있는 생각 깊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연구 습관

저는 목회자가 너무 바빠서 설교 준비 시간과 개인 성경 공부 및 기도 시간 외에는 독서를 위해 하루에 한 시간도 내지 못한다는 말을 믿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목회자는 깊은 연구를 위해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는 따로 떼어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주간 일정에서 이 시간을 다른 일에 완전히 차단하고, 긴급 상황이 아니면 이 시간이 침범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회중에게 이 시간의 필수적 가치를 알려 주어야 합니다. 또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고요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말할 수 없이 큰 유익이 됩니다.

 

연구의 장애물들

어떤 목회자들은 할 일은 지나치게 많은데 사람이 부족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주장 뒤에는 대부분 목회자의 역할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모든 고삐를 쥐고 있고 평신도 지도자와 책임을 나누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당연히 공부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으로 부름받았습니다(6:4).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아주 좋은 것이라도 그것 때문에 기도와 말씀 사역을 못하게 되면 안 됩니다. 공부의 궁극적 장애물은 게으름입니다. 목회자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게으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대개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게으름을 물리치지 않으면 삶의 규칙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러 다른 사람까지 우리의 게으름을 알게 되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5장 설교 준비하기

우리는 어떻게 설교를 준비해야 할까요? 정해진 한 가지 답은 없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모든 설교자는 자기 개성과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서로에게서 배울 수는 있습니다. 설교 준비에 포함되는 여러 단계에 대한 제 접근법을 소개합니다.

 

본문 선정하기

설교할 본문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다음 네 요소를 보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례(liturgy)입니다. 즉 교회 절기가 다가오면 그 절기에 맞는 본문을 선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외부 사건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국가적 사건이나 공적 논쟁, 자연재해나 다른 참사일 수도 있습니다. 셋째는 목회적 요소입니다. 좋은 목회자는 자기 성도의 필요, 문제, 의심, 두려움, 소망을 알기 때문입니다. 회중에게 성경 어느 부분을 더 잘 알고 싶은지, 인생의 어떤 문제에서 성경의 분명한 답변을 얻기 원하는지 묻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넷째는 개인적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성경 본문을 통해 나에게 친히 말씀하셔서 내가 그 본문을 분명히 깨닫고 유익을 얻으면, 이런 통찰과 복을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문 연구하기

1.본문이 속한 맥락에서 본문의 기능은 무엇인가?

2.본문의 주된 내용은 무엇인가? 어떤 단어 또는 구가 이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는가?

3.이 주제에 관한 저자의 주장은 무엇인가?

4.성령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시는가?

5.이 본문은 이런 반응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가?

6.이 본문이 구원 역사, 거시적인 구속의 드라마에는 어떻게 들어맞는가?

이런 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저 우리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설교하기 쉽습니다. , 본문이 말하고 일하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 대신 본문을 읽을 때 우연히 생각난 것을 설교하게 됩니다.

 

본문 숙고하기

우리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 본문을 숙고해야 합니다. 본문이 마음에 감동을 줄 때까지 본문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연구가 기도를 대체할 수 없고 기도가 연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둘 다 해야 합니다.

 

중심 생각 분리하기

읽기와 기도, 연구로 본문을 계속 숙고하면서 우리는 본문의 중심 생각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본문에는 중심 사상이나 핵심 개념 혹은 요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내하면서 중심 생각이 분명하게 떠오를 때까지 숙려해야 합니다. “모든 설교는 그 주제가 철저히 단일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강의와 다르게 설교는 오직 하나의 중심 메시지만을 전달해야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문의 중심 생각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건너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본문을 곡해할 위험이 사라집니다. 또한 이렇게 준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에 불을 붙이며, 우리 설교를 지휘합니다.

 

내용 구성하기

우리의 목표는 본문의 중심 생각이 최대한 영향을 발휘하도록, 그래서 그것이 첫 번째 청자(또는 독자)의 삶에서 이루고자 한 바를, 우리의 설교를 듣는 청중의 삶에서도 성취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중심 생각과 무관한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구조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구조는 너무 빤히 보이기도 하고, 너무 복잡하기도 합니다. 숙련된 강해자는 회중의 눈앞에서 본문이 스스로를 열어 보이도록 합니다. 설교의 구조를 명확히 구성했다면 구조에 단어로 살을 붙여야 합니다. 우리가 고르는 단어는 가능한 단순하고 분명하며 문장은 단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듣는 이의 마음에 그림이 그려질 만큼 생생해야 합니다. 청중이 이해할 쉬운 단어를, 우리가 말하는 내용을 청중이 마음에 그리도록 도와줄 생생한 단어를, 진리를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는 정직한 단어를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단어로 적은 것을 항상 이미지나 실례(예화)로 보완해야 합니다.

 

결론 더하기

설교의 본론이 준비되어야 서론과 결론을 쓸 준비가 된 것입니다. 서론을 쓰기 전에 결론을 쓰는 것이 이상하긴 합니다만 결론을 쓰면서 설교 메시지는 최종 요점과 적용에 이르게 됩니다. 결론을 쓰고 나서야 서론에 쓸 내용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결론에서는 설교를 요약합니다. , 설교의 중심 생각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했던 말을 단순히 반복하지 않게 주의하고, 다른 방법으로 요점을 저달해야 합니다. 또한 결론에는 개인적 적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설교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설교 본문과 청중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 자체가 우리가 찾는 청중의 합당한 반응을 결정합니다. 끝으로 설교를 마치면서는 사람들에게 함께 기도하도록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

 

서론 구상하기

좋은 서론은 적어도 세 가지 목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설교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알고 싶게 만들어 줍니다. 둘째, 청중으로 하여금 그들이 지금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설교를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셋째, 중심 생각을 소개하고 듣는 이를 중심 생각으로 이끌어 줍니다.

 

설교문 작성하기 및 기도하기

이제 설교를 글로 적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고정된 규칙은 없지만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극단은 완전한 즉흥 설교입니다. 반대 극단은 원고에 얽매여 설교문을 그대로 낭독하는 것입니다. 설교문을 작성한 후에는 기도를 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설교 메시지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설교자가 설교 준비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탁월하게 요약했습니다. “먼저 제 자신이 완벽하게 읽고, 그 다음 제 자신이 명료하게 사고하고, 그 다음 제 자신이 뜨겁게 기도하고, 그리고 제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설교 준비에 드는 시간

설교 준비에 실제로 걸린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과정이 언제 시작되는지 누구도 정확히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대강의 지침을 제시하자면 초보 설교자는 본문을 선정하는 시점에서 설교를 작성하는 시점까지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많은 설교자도 이 시간을 다섯 시간 내지 여섯 시간 미만으로 줄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5분을 설교하는 데 적어도 한 시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6장 정직성과 진정성

기만과 위선보다 더 역겨운 것은 없습니다. 정직보다 더 큰 매력은 없습니다. 정직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설교자는 강단에서는 진심으로 말해야 하고, 강단 밖에서는 설교한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성령이 목회자에게 행하시는 일이 단순한 회심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들은 목회자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성숙, 곧 성령의 열매도 찾습니다. 강조점은 분명합니다. “설교자는 설교만 할 수 없다. 그는 또한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사는 삶은둘 중 하나다. 그의 설교를 무력화하거나, 그의 설교에 피와 살을 부여한다.”

 

정직의 중요성

철저하게 정직하다가도 가식과 위선에 빠지기는 아주 쉽습니다. 신약성경은 정직성이 중요한 이유를 적어도 세 가지 제시합니다.

첫째, 가르치는 일이 영적 은사고 큰 특권이기는 하지만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경고합니다(2:19-21; 23:1-3; 3:1).

둘째, 위선은 큰 실족의 원인이 됩니다(고후6:3-4).

셋째. ‘참된사람이 미칠 수 있는 긍정적 영향력이 있습니다(고후4:2).

 

진정성

진정성은 정직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직하다는 것이 자신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라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은 여기에 더해 자신이 하는 말을 느끼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진지한 자세로 복음을 전할 대 회중은 같은 자세로 복음을 고민하게 됩니다. 스펄전은 학생들에게 마치 비몽사몽 중인 것처럼 회중에게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설교가 또렷한 코골이 소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설교 메시지를 전하는 우리에게 졸음이 온다면 청중이 깨어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유머

예수님도 가르치시며 유머를 사용하셨습니다(23:24). 그러나 유머는 꼭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때에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심각한 주제에 대해 말할 때는 절대 농담을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유머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유머는 사람들의 방어적 태도를 무너뜨리는 데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유머는 완강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말씀에 민감하게 응답하도록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머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을 수 있게 하고,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여 회개로 이끕니다.

 

결론

정직성과 진정성은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이 아닙니다. 정직성과 진정성은 성령의 열매로서, 자신이 하는 말을 믿고 느끼는 사람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설교 뒤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 전체가 있다. 설교는 한 시간 동안의 행위가 아니다. 설교는 한 인생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 데 20년이 걸리는 이유는 설교자가 빚어지는 데 2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7장 용기와 겸손

사도들과 같은 용기 있는 설교자,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전할 설교자가 절실합니다. 사람을 즐겁게만 하는 이들과 설교 시간만 채우는 이들은 결코 좋은 설교자가 아닙니다. 설교자는 성경 강해라는 거룩한 과업으로 부름받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선포하도록 지명되었습니다.

 

용기 있는 설교의 전통

많은 설교자가 용기 있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모세는 반대와 뒤이은 고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고, 가르쳤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도전하고 나봇을 살해한 왕과 왕비를 꾸짖으며 종교적 진리와 사회적 정의를 위해 홀로 싸웠습니다. 세례요한도 용기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받는 참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도 두려움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에서 그분의 인기가 약 1년 동안만 지속된 점과 권세자들이 그분을 죽이기로 한 결정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로마에 온 바울이 가택 연금되어 있는 상황에서 끝이 납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그를 찾아오는 모든 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여전히 담대하게 거침없이설교하고 가르쳤습니다(28:30-31). 4세기 크리소스토무스는 처음에는 안디옥에서, 그리고 황후의 마음을 사 유배에 처하기 전까지는 6년간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서 큰 용기와 능력으로 설교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신체는 약했지만 열정적이었고 설교는 강력했습니다. 20세기에도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고 설교 메시지를 수정하는 것을 거부한 용기 있는 설교자들이 전 세계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우간다의 대주교 자나니 루움(Janani Luwum)입니다. 루움은 이디 아민(Idi Amin)의 도를 넘은 행위를 규탄한 것 때문에 1977년 살해당했습니다.

 

위로하기와 불편하게 하기

설교자는 스스로 말씀을 바꿀 자유가 없습니다. 모든 설교자는 여러 상황에서 인기 없는 진리와 인기 있는 거짓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복음은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배타성에 분노하고, 자신의 지혜나 선함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는 굴욕감에 분개합니다. 설교자는 듣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임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체계적 강해의 가치

특정 주제를 다루려면 용기가 필요하므로 저는 체계적 강해를 권합니다. 성경의 어느 한 책이나 한 책의 어느 한 부분을 마칠 때까지 한 구절씩 또는 한 단락씩 꾸준히 강해하는 것입니다. 이 접근법은 다른 경우라면 우리가 간과하거나 심지어 고의로 피할 수도 있는 구절들을 논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고 성장하는 교회의 건강을 위해서 우리는 체계적 강해로 돌아가야 합니다.

 

겸손

안타깝게도 우리는 강단에서 용기를 내겠다는 결심 때문에 완고해지거나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설교자가 거침없이 설교할 수는 있지만 그 때문에 교만해지면 설교를 망치기도 합니다. 교만은 어떤 설교자들에게는 더 간접적이고, 더 기만적이며, 더 고질적입니다. 끊임없이 찬사를 갈구하면서도 겸손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실제로는 설교자 자신의 영광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원수와 싸워야 합니다. 교만과 싸우는 한 가지 방법은 겸손의 핵심이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6: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 주님을 높이고, 성령께 의존하도록 우리가 부름받았음을 되새겨야 합니다. 자신보다 타인을 귀하게 여기고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2:3-4). 이를 위해서는 겸손한 지성, 겸손한 동기, 겸손한 의존이 필요합니다.

 

맺음말

이 책은 본래 나는 설교를 믿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제목은 강한 개인적 확신을 보여 줍니다. 참으로 저는 설교를 믿습니다. 진정한 성경적 설교야말로 교회에 건강과 활기를 되찾아 주고, 교회 구성원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고 듣는 앞에서 설교하며, 그들을 보면서 충실하게 설교해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고 들으시는 앞에서 우리가 설교한다는 자각은 훨씬 큰 도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더 꾸준하고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설교할 때 그분이 보고 들으신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인식하고, 이 인식을 통해 더 충실한 설교자가 되도록 허락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한인희의 책요약

한인희의 책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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