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마귀, 13-19)
13. 성경은 우리를 무장시켜 원수와 맞서게 한다.
성경이 마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의도는, 모두가 우리들을 깨우쳐서 저들의 술책과 계략을 경계하며 따라서 이들 강력한 원수들을 정복하기에 충분한 힘 있고 강한 무기로 우리를 무장시키려는 데 있다. 우리는 원수가 가차 없이 우리를 위협한다는 것을 미리부터 경고 받아 왔다. 이 원수는 무모할 정도로 대담하며, 무용(武勇)을 가진 자이며, 교활한 술책에 능숙하며,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민첩함을 지닌 자이며, 가능한 모든 무기를 가졌으며, 전술에 노련한 자의 화신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4. 사악(邪惡)의 영역
더욱이 성경은 이 싸움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더욱 자극하며 격려하기 위해, 우리의 싸우는 원수의 수가 하나 둘 하는 소수가 아니라 대군이라고 말한다(막 16:9; 눅 8:2; 눅 8:30). 그러므로 우리는 무수한 원수들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의 소수를 멸시하여 싸우기를 게을리 하며, 혹은 가끔 휴전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머지 태만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나 마귀에 대하여 자주 단수로 언급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의의 나라를 반대하는 악의 통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의 단체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것처럼, 불신앙의 무리들과 불경건 그 자체는 그들에게 최고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그들의 왕과 함께 묘사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고 말씀하셨다.
15. 화해할 수 없는 싸움
우리가 자신의 구원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파괴하려고 함정을 파는 자와 화복해서도 안 되고 휴전을 해서도 안 된다. 창세기 3장에서 그는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함으로 인간을 파멸에 빠뜨리고 있고(1-5절), 복음서의 기자들도 역시 그를 가리켜 “원수”라고 불렀으며(마 13:28, 39), 영생의 씨앗을 부패케 하기 위해 가라지를 뿌리는 자라고 기술하였다(마 13:25).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증거(요 8:44)는 그의 모든 행위에서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그는 본래 타락하고 사악하며 악의로 가득찬 자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공격하는 데 열중하는 그 성질은 극도로 부패한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실로 요한은 마귀를 모든 악과 불의의 창시자요 지도자이며 설계자라고 생각하였다(요 3:8).
16. 마귀는 타락한 피조물이다.
그러나 마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의 본성에 속하는 이 사악함은 창조에서 온 것이 아니라 타락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그에게 있는 정죄 받아야 할 것들은 모두가 다 배반과 타락에서 왔기 때문이다. 마귀가 진리에 서지 못한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은(요 8:44) 확실히 한때는 진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가리켜 “거짓의 아비”라고 부름으로써, 전적으로 마귀 자신에게 돌려야 할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시키지 않도록 하셨다. 마귀의 타락과 그 타락의 원인, 방법, 시기, 성질에 대하여 성경이 많은 구절들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또는 확실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여 불평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불필요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마귀의 성질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지식으로 만족하도록 하자. 즉 악마는 창조시 본래는 하나님의 천사였으나 타락하여 자멸하였으며, 남을 파멸시키는 파멸의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알아서 유익하기에 베드로와(벧후 2:4), 유다는(유 6절) 이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택함받은 천사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딤전 5:21), 이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버림받은 천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17. 마귀는 하나님의 권능하에 있다.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 불화와 반목이 있다고 하는 데 대하여 우리가 확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허락이 없이는 사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욥 1;12, 2:6; 왕상 22;20-22; 삼상 16:14, 18:10; 시 78:49). 그러므로 사탄은 분명히 하나님의 권능하에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를 섬기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께 반항한다든가 사탄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반항과 반대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전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사탄의 의지나 노력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본래 사악한 존재여서, 조금도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아주 완강하게 불순종하며 반항한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께 대하여 격렬하게 또 고의적으로 반항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악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사악함이 마귀를 재촉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신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행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권능의 고삐로 잡아 매고 제지하시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만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창조주에게 순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재촉하실 때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8. 승리의 확신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자유롭게 악령들을 굴복시키며 저들의 활동을 지배하시기에, 하나님은 저들로 신자들과 싸우게 함으로 신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때로는 공포에 ,패배에, 상처에도 있게 하신다. 그렇지만 악령들은 신자들을 정복하지도 못하며 박멸하지도 못한다. 신자들은 이 악령으로 인해 마음의 불안을 갖게 되기 때문에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7; 참고, 벧전 5:8-9)와 같은 권고를 들어야 한다. 이런 훈련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공통된 것이다(고후 12:7). 그러나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약속(창 3:15)은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인 모든 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사탄에게 정복된다거나 압도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요컨대, 그들은 전생애를 통해 수고하여 마침내는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딤후 2:25-26; 롬 16:20; 요 14:30). 더욱이, 그 승리는 지금 지금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우리에게는 부분적으로만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연약한 육신을 벗어 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때에 완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질 때에 사탄과 그의 권세는 무너지게 된다. 제자들이 그들의 전도의 효력에 대해 보고했을 때, 이 답변을 통해(눅 10:18. 참고, 눅 11:21-22) 그것을 확인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사망의 세력”을 잡은 사탄을 정복하셨으며(히 2:14), 교회를 해하지 못하도록 사탄의 모든 세력을 타파하셨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더라면, 교회는 매순간 몇백 번이고 파멸의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영혼에 대하여는 사탄이 그 어떤 권세도 행사하지 못하게 하셨으며, 단지 자기 백성의 수에 넣지 않기로 하신 불경자들과 불신자들만을 지배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추방당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이 세상을 소유한다고 성경은 말한다(참조, 눅 11:21).
19. 마귀는 어떤 사상이 아니라 실재이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에서 오는 악한 감정 혹은 마음의 불안이 바로 마귀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반박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적지 않게 그리고 명백하게 증거해 준다. 유다서 6절과 9절, 마태복음 12장 43절, 요한복음 8장 44절과 요한일서 3장 8절과 10절이 대표적인 예이다(참고, 욥 1:6, 2:1). 더욱이 그중에서도 가장 명백한 구절들은, 마귀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느끼기 시작하여 부활시에는 특별히 느끼게 될 형벌에 대하여 언급하는 구절들이다(마 8:29, 25:41; 벧후 2:4). 만일 마귀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가 영원한 심판을 받도록 운명지어져 있ㅇ며 그를 위해 영원한 불이 준비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의해 지금 그들이 고통과 괴로움을 받고 있다는 등의 표현들은 다 무의미하다. 그러나 이 점은 의 말씀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지만 동시에 신기한 것만을 좋아하는 공상가들에게는 문제가 되기 때문에, 성경의 증언들은 저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의도한 바를 다 완수하였다고 생각한다.
(창조에 관한 영적 교훈, 20-22)
20. 창조의 위대함과 부요함
어디를 보나 눈에 띄는 것은 다 하나님의 사역임을 기억하는 일,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만물을 창조하셨는가를 경건히 명상하여 생각하는 일, 이러한 것들은 신앙을 위한 으뜸되는 증거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연의 질서에 있어서 첫째가는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데 유익이 되는 것을 참된 신앙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모세가 간단하게 기록하였으며(창 1, 2장) 후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 특히 바실리우스나 암브로스와 같은 사람들이 상세하게 설명한 우주 창조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21. 하나님의 사역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간단히 말하자면 독자는 다음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첫째로 만일 누가 하나님께서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피조물에게서 보여 주신 그 명백한 권능을 아무 생각 없이 잊어버리고 그냥 넘겨 버리지 않는다면, 둘째로 누가 만일 마음에 감동을 받을 정도로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기를 배운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라는 것을 이해하는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도 외관상 이 이상 더 아름다운 것으로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무수한 성군(星群)을 놀라운 질서에 따라 배치, 배열하시고 서로 어울리게 하신 그 예술가야말로 얼마나 위대한가 함을 우리가 생각할 때 비로소 이 법칙의 첫째 부분이 예증된다.
22.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을 숙고할 때 절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신뢰가 우러난다.
여기에 법칙의 둘째 부분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신앙과 보다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위해서 만사를 제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주신 큰 은사에서 느끼며, 그리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섭리와 부성적(父性的)인 배려를 보여 주심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벌써 인간에게 유용하며 유익하다고 미리 아신 것들을 모두 준비하셨다. 이 외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에 힘입어 온 세상에 있는 것들이 다 우리에게 예속된다는 것을 모세에게서 듣는다(창 1:28, 9:2). 그러므로 우리의 안녕에 필요한 것은 그 어떠한 것도 결핍함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 결론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분배는 그의 솜씨와 권능으로 된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져서 그의 성실한 보호속에서 양육과 교육을 받고 있는 그의 자녀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축복의 충만함을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기대하고, 하나님께서도 구원에 필요한 것을 우리가 갖지 못한 채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완전히 신뢰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의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며, 우리에게 베풀어진 유익한 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으로 인식하고 이를 감사한 마음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인자하심의 아름다움에 의해 초대되었으므로 전심으로 그를 사랑하며 섬기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