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창조된 인간의 본성, 영혼의 기능, 하나님의 형상, 자유 의지, 인간성의 원초적(原初的) 순결
(타락한 인간의 본성: 그의 영혼은 거의 부패하였으나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1-4)
1. 하나님은 인간을 순결하게 창조하셨으므로 인간은 죄에 대한 책임을 창조주에게 돌릴 수 없다.
이제부터 인간의 창조에 대하여 말해야겠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의, 지혜, 선을 보여주는 가장 고귀하고 가장 두드러진 표본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명백하고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우리의 상태는 어떠했는가에 대한 지식이며, 둘째는 아담이 타락한 후 인간의 상태는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지식이다. 한편, 만일 우리가 이 슬픈 파멸로 우리의 본성이 어떻게 부패되었고 어떻게 변형되었는가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인간 창조를 이해한다 해도 그것은 그다지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이 생래적(生來的)인 악을 지적하는 중 그것을 인간 본성을 만드신 창조주께 책임지우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육은 모든 구실을 열망하며 이것으로 자신의 악에 대한 책임을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악한 의도를 열심히 반대해야 한다.
2, 육체와 영혼의 상이점
내가 아는 바로는 “영혼”이라는 말은 불멸적이면서도 창조함을 받은 실재를 의미하며, 이것은 인간의 보다 고귀한 부분이다. 이 말은 가끔 “영”(靈, spirit)이라고 불린다. 이 명사들이 결합되는 경우에는 서로 그 의미를 달리하지만, “영”이라는 말이 단독으로 사용될 때에는 솔로몬이 죽음에 대하여 말하면서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전 12;7)고 말한 것처럼 이 말은 “영혼”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영을 성부께 부탁하셨고(눅 23:46), 스데반이 그리스도께 자기 영혼을 위탁하였다는 사실은(행 7:59),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영원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인간 마음에 부여된 그 탁월한 여러 은사들은 신적인 무엇이 여기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이 모든 것들은 불멸적 실재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인간 마음의 민첩함은 천지와 자연의 비밀을 찾아내며 이해와 기억으로 모든 시대를 알고 모든 사물을 적절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며 또한 과거사에서 미래사를 추론하는 데, 이것은 분명히 육체와는 분리된 어떤 무엇이 인간에게 감취어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성경은 영혼을 육체와 분명히 구별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는 명칭까지 그 혼에 붙여줌으로써 이것이 인간성의 주요 부분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후 7:1; 벧전 2:25, 2:11; 히 13:17; 고후 1:23; 마 10:28; 눅 12:5; 히 12:9; 눅 16:22-23).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이 문제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는 역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다(창 1:27).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외형에서 빛나고 있지만 그러나 그 형상의 본래의 좌소가 영혼에 자리 잡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형상”이라는 말과 “모양”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적지 않은 논쟁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 두 말의 차이점을 까닭 없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양”이라는 말은 설명을 위해서 첨가된 것일 뿐 그 두 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첫째, 말을 반복하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어서 그들은 한 가지 일을 두 번 연거푸 표현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둘째, 이 문제 자체에서 볼 때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까닭에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다. 그러므로 영혼이 인간은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을 영혼과 관련시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양은 모든 종류의 동물을 훨씬 능가하는 인간성의 탁월성 전체에까지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아담이 처음에 받았던 그 완전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인간을 모든 다른 피조물 이상으로 높이는 것 곧 인간을 범속(凡俗)에서 구별하는 무언의 대조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증거하신 대로 우리들의 최고의 완성은 천사들과 같이 되는 데 있다(마 22:30). 다만 모세는 인간을 다만 눈에 보이는 피조물과만 비교하였다.
4. 하나님의 형상의 참 성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된다고 말하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담이 그의 원래의 상태에서 타락했을 때, 이 변절로 말미암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소멸되거나 파괴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주 부패했기 때문에, 남은 것은 다만 무섭도록 추한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구원의 회복의 시초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참되고 완전한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신다는 이유에서 제2의 아담이라고 불려진다.
우리는 바울이 이 갱신에 대하여 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던가를 알게 된다(고전 15:45; 골 3:10; 엡 4:24). 첫째로는 지식을 말하며, 둘째로는 순결한 의와 거룩함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은 처음에는 지성의 빛과 마음의 바름과 모든 부분의 건전함에서 뚜렷이 빛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완전하신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 형상과 같게 될 때에, 우리도 그와 같이 회복되어 참된 경건, 의, 순결, 지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된다.
요한은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안에 있었던 “생명”이 바로 “사람들의 빛”(요 1:4)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의도는, 인간을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특수한 은총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는 인간이 평범한 생명을 부여받지 않고 지성의 빛이 결합된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동물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성의 완전한 탁월성으로, 이것은 타락 이전에는 아담 안에서 빛나고 있었으나 후에는 부패하여 거의 지워졌기 때문에, 파멸 후에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혼란하고 이지러지고 오염된 것뿐이다. 이것은 지금 부분적으로 피택자들에게서 보게 되는데, 그것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에게서만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완전한 광채를 발하게 될 것이다.
영혼이 오성과 의지와 기억을 내포한다고 해서 그것을 삼위일체의 반영이라고 본 어거스틴의 이론은 결코 건전한 것이 못 된다. 또한 하나님의 모양이 인간에게 주어진 지배권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도 개연성(蓋然性)이 없다. 하나님의 형상은 당연히 인간의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로,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실로 그것은 영혼의 내적 선(善)인 것이다.
5. 영혼 유출에 관한 마니교도의 오류
우리는 마니교도의 망상을 공박할 필요가 있다. 저들은 마치 무한한 신성의 어느 부분이 인간 속에 흘러 들어오기나 한 것처럼, 영혼을 하나님의 본질의 유출이라고 생각하였다. 만약 하나님의 본질에서 인간의 영혼이 유출되었다고 하면, 하나님의 본성은 변화와 고뇌뿐만 아니라 무지, 악한 욕망, 허약, 그리고 각종 악에도 종속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만큼 불안정한 존재는 없다. 그는 무지로 인해 거듭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는 지극히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는 존재이다. 우리가 알기에 인간의 마음은, 하수구이자 각종 불결한 것들의 잠복소이다. 바울은 아라투스(Aratus)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행 17:28)고 말한 바 있거니와, 이것은 본체에 있어서가 아니라 특성에 있어서 그의 소생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은사로 우리를 장식하시는 한에 있어서만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에 새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혼도 천사와 마찬가지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틀림없는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창조는 유입이 아니라 무로부터의 존재의 시작인 것이다. 영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요 육체를 떠날 때에는 다시 그에게로 돌아간다고 해서(전 12:7),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본체에서 뜯어 낸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아담의 타락에 비추어서 비판받는 철학자들의 영혼관, 6-8)
6. 영혼과 그 기능
영혼은 무형의 실체임을 실로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배웠다. 영혼은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육체를 거소(居所)처럼 간주하여 거기에 머물며, 육체의 모든 부분에 생기를 넣어 주고, 육체의 모든 기관을 각각의 행동에 적절하고 유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수위(首位)를 차지하며, 그리고 지상 생활의 의무만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이 마지막 것은 타락 때문에 분명하게 지각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어떤 흔적이 새겨진 채 인간의 악 자체 속에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명성에 대한 그렇게 큰 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수치심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수치심은 어디서 오는가? 명예로운 것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실의 시초와 원인은, 인간이 의를 계발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여기에 바로 종교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다.
나는 먼저 오관(五官)이 있음을 인정한다. 플라톤은 이를 차라리 기관(器官)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으며, 이 기관에 의해 일체의 대상이 일종의 그릇처럼 공통 감각에 전달된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공통 감각에 의해 이해된 것들을 식별하는 상상력이 따른다. 그 다음에는 보편적 판단을 포함한 이성이 따른다. 마지막으로는 오성(悟性)이 있는데, 이것은 이성이 산만하게 생각한 것을 집중적이며 조용한 명상 속에서 정관(靜觀)한다. 오성, 이성, 상상력 등 영혼의 세 가지 인식 기능과 일치하는 세 가지 욕구 기능도 있다. 첫째는 의지인데, 이것은 오성과 이성이 제시하는 것을 추구한다. 둘째는 분노로, 이것은 이성과 상상력에 의해서 제시된 것을 포착한다. 셋째는 욕망으로, 이것은 상상력과 감각에 의해 제시된 것을 파악한다. 이러한 철학자들의 내용을 반다하지 않지만 기독교인은 이런 설명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7. 근본적 기능으로서의 오성(또는 지성)과 의지
우리는 인간의 영혼이 두 부분, 곧 오성(悟性)과 의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로 하자. 오성이 하는 일은, 대상을 식별하여 대상을 각각 시인하든가 시인하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오성은 말하자면 영혼의 지도자요 지배자이며 의지는 오성의 명령을 항상 유의하며 자신의 욕망에 있어서 오성의 판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자.
8. 자유 선택과 아담의 책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에 마음을 주시어 선을 악에서, 정의를 불의에서 각각 가려내며, 또한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하여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과 마땅히 피해야 할 것을 구별하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의지를 결합시킴으로써 의지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간의 최초의 상태는 이와 같은 탁월한 은사들로 뛰어난 품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때문에 그의 이성과 지성, 사려 분별, 판단은 지상 생활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충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을 찾아 올라갈 수도 있었다. 여기에 선택이 추가되어, 욕구를 조정하고, 모든 기관의 활동을 조정하며 그리하여 의지로 하여금 이성의 지도에 전적으로 따르게 하였다.
이러한 완전한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가 원하기만 하였더라면 자유의지로 영생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타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 질 수 있었으며 따라서 항구적인 인내성을 받지 못했던 까닭으로, 그는 아주 쉽게 타락하였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파멸시킴으로써 자신의 축복을 부패시키기 전에는 그의 마음과 의지는 최고의 공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모든 유기적인 부분들은 순종할 수 있도록 바르게 조직되어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아담의 의지의 힘이 약했던 까닭에 그것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였다고 반론을 제기하면, 아담의 신분 그 자체가 어떠한 변명도 제거해 줄 것이라고 나는 답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범죄할 수 없거나 범죄를 원하지 않도록 인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하나님께 강요한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실로 그러한 인간성은 한층 탁월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이런 본성을 사람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불평한다는 것은 매우 악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뻐하심에 따라 자유롭게 주시기 때문이다. 아담으로서는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 그는 자신의 파멸을 자발적으로 초래하였을 정도로 아주 많은 힘을 받았던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평범하고 변하기 쉬운 의지를 주시어 그를 타락하게 하고 이 타락에서 자신의 영광의 기회를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