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롤링배너1번
한인희의 책 산책
조회 수 10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 그리스도 안에 계신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 처음에는 율법으로 조상들에게, 그리고 다음에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계시되었다.

 

1. 아담의 타락과 배반으로 인류 전체가 저주에 넘겨졌고 그 원상태가 부패하였다 : 원죄론

 

(우리 자신을 참으로 알면 자기 신뢰가 없어진다. 1-3)

1. 자기에 대한 그릇된 지식고 바른 지식

어떤 철학자들은 자기를 알라고 권하면서 자기의 가치와 우수성을 아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을 허망한 자신(自信)과 자만으로 부풀게 만드는 것만을 자기 속에서 관찰하기를 바란다(1:27).

그러나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첫째로 창조시에 우리가 무엇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관대한 호의를 계속하시는가를 생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천적인 우수성이 원상을 유지했더라면 얼마나 위대했을까를 아는 동시에,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것이 조금도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묵인하에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아담의 타락 이후에 불행하게 된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일을 알 때에 우리의 모든 자랑과 자신이 사라지게 되며 우리는 진심으로 겸손하게 되고 수치심으로 위축될 것이다.

 

2. 사람의 본성은 망상적인 자기 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람의 본성은 남의 아첨을 받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없다. 따라서 자신의 천품이 높이 평가되는 것을 알 때에 사람들은 자기의 천품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이 전에서 대개 치명적 오류를 범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맹복적인 자애(自愛)는 모든 인간의 천성이므로, 자기들의 천성에는 가증하다고 여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사람들은 가장 선선히 믿어 버린다. 따라서 사람은 선하고 복된 생활을 할 풍부한 능력을 타고 났다는, 이 완전히 허망한 견해가 아무 외부의 지지가 없어도 일반적으로 신뢰를 얻는다.

사람은 자존심이 골수에 박혀 있으며,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매혹적 언사를 가장 기뻐한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공중 앞에서 인간성을 가장 듣기 좋은 말로 찬양한 사람의 말을 사람들은 경청하고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를 만족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인간의 우수성에 대한 이런 예찬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그것은 자기 도취 이외의 아무 성과도 없으며 참으로 거기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속여 철저한 파멸로 몰아 넣는다.

 

3. 자기 인식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

육적인 판단에 의하면, 사람은 자기를 아주 잘 아는 것 같다. 사람은 자기의 이해력과 정직함만을 믿고, 담대하게 덕을 닦으려고 노력하며 모든 죄악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탁월하고 존귀한 경지를 향해서 정성껏 노력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을 표준으로 하여 자기를 세밀히 검토하는 사람은 결코 용기와 자신을 품을 이유를 찾아 낼 수가 없다. 자기 성찰이 깊어 갈수록 더욱 낙심하며, 드디어는 일체의 자신을 빼앗기고 인생을 바르게 지도해 줄 것이 자기에게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에 동의를 한다면, 이제 우리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기 인식을 분류해 보자. 첫째로, 자기가 창조되며 귀한 천품을 받은 것은 무슨 목적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지식에 힘입어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내세 생명에 대하여 명상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로, 자기의 재능을, 아니 재능의 결핍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 결핍을 알게 될 때에 사람들은 극도의 정신적 혼란으로 땅에 엎드릴 것이며, 이른바 무()의 상태로 될 것이다. 첫째 점을 고려하면 자기의 의무의 성격을 인식하게 되며, 둘째 점에서는 그 의무를 실천하려는 자기의 능력의 한도를 알게 된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간이 시초의 천품을 잃었고 인류 전체가 파멸하게 되었다. 4-7)

4. 아담이 타락한 이야기는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3): 그것은 배신이다.

아담의 죄를 탐욕에 의한 무절제라고 하는 일반적인 생각은 유치하다. 이것은 하나의 과실을 먹지 않은 데 최고의 미덕이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보다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이름만 보더라도, 그 명령의 유일한 목적이 그가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며, 악한 정욕으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모세가 기록한 유혹의 성격에서 보다 완전한 정의를 얻어야 한다. 부정한 생각이 있었기에 여자는 뱀에게 속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 그러므로 불순종이 타락의 시초였다는 것은 이미 분명한 사실이다(5:19). 그러나 동시에 주목해야 할 점은, 처음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반역한 것은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진실을 멸시하고 허위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일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경외심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충(不忠)이 타락의 근본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자기를 만드신 이의 권위를 멀리하는, 아니 오만하게 자기의 멍에를 벗어 버리는 그 변절이 추악하고 가증한 죄라면, 아담의 죄를 관대히 보려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아울러, 그것은 단순한 변절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비루한 비난과 결합한 것이었다. 끝으로, 배신으로 인하여 야심이 생겼으며 야심은 참으로 완강한 불순종의 모태가 되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버린 사람은 정욕이 이끄는 대로 뛰어들었다. 그러므로 그 때에 사탄에게 귀를 열어 주었기 때문에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참조, 9:21), 오늘날 우리가 같은 창()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 앞에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는 베르나르두스의 가르침은 옳다. 참으로 모든 정욕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굴레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의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과, 행복한 생활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곧 그러한 굴레가 된다.

 

5. 최초의 죄가 원죄이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영혼의 죽음이 되었다. 원인을 찾는다면,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서 창조된 피조물은 확실히 사람이 받을 벌의 일부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 편만한 저주는 아담의 죄에서 흘러 퍼진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퍼지더라도 불합리하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물려받은 부패이며, 이것을 교부들은 원죄라고 불렀다. 여기서의 라는 말은 이전의 선하고 순수했던 본성을 잃어 버렸다는 뜻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온 사악으로 인해서 부패한 것이 아니라 모태로부터 타고난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 점을 부인한다는 것은 지극히 파렴치한 짓이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의 무리가 모든 다른 점에서 파렴치한 짐승들이었다는 것을 저 거룩한 분의 경고에서 깨닫는 사람은 그들의 무모한 태도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은(51:5)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불순한 씨의 후손인 우리는 날 때부터 죄에 전염되어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이미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웠고 오점이 많았다(14:4).

 

6. 원죄는 모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담은 시조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인간성의 뿌리였으며, 따라서 그가 부패한 때에 인류가 당연히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5:12). 그리스도의 의와 그에 따른 그의 생명이 전달 또는 분여(分與)에 의해서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 논의할 여지가 없는 일이라면, 즉시 의와 생명은 아담에게서 잃어졌다가 그리스도에게서 회복된다는 결론이 따른다. 또 죄와 죽음은 아담을 통해서 잠입했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없어진다는 결론이 따른다(5:19). 그러므로 아담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보면, 아담은 우리를 자기의 멸망에 끌어넣어 자기와 함께 멸망하게 만들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은총으로 우리를 다시 구원해 주신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부활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고자, 아담 안에서 잃어진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고전 15:22). 그는 우리가 모두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동시에 우리가 죄의 병에 전염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단언한다. 불의의 책임이 없는 사람에게 정죄가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담과 함께 죽었다라고 하는 말은 해석할 길이 하나밖에 없다. 즉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이 불행과 멸망을 당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본성가지도 같은 파멸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죄책 때문이 아니라-그의 죄책은 우리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그가 빠진 그 부패를 모든 후손에게 감염시켰기 때문이다.

바울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은(2:3), 모든 사람이 이미 모태에서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바울이 본질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가 아니라 분명히 아담에게서 부패한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죽음의 창시자라고 하는 것은 가장 부당한 생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자기를 부패시키고, 그것이 모든 후손에게까지 감염되고 만연된 것이다. 우리의 하늘 심판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은 모두 날 때부터 악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신다(3:6). 따라서 사람이 거듭나기까지는 모두 그 앞에 생명의 문이 닫혀 있다고 하신다(3:15).

 

7. 죄의 유전.

주께서 인간성에 부여하시고자 하신 천품들을 아담에게 위탁하셨다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아담이 그 받은 천품들을 잃었을 때에, 자신만이 잃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도 잃게 한 것이다. 아담이 잃어 버린 천품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받은 것이며, 그 천품은 그 한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주셨다. 그러므로 아담이 빼앗겼을 때에 인간성이 벌거숭이가 되고 빈궁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나, 아담이 죄에 전염되었을 때에 감염이 인간성에 잠입했다고 상정(想定)하는 것은 조금도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아담에게서 시작한 부패는 선조로부터 후손에게 전달되어, 끊임없이 흘러간 것이다. 전염은 육이나 영혼의 본질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염은 처음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동시에 후손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천품을 가지며 또 잃어버리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것과 같이, 죄 있는 불신자든 죄 없는 신자든 사람은 썩은 본성에서 자녀를 낳기 때문에 무죄한 자녀가 아니라 유죄한 자녀를 낳는다.

 

(원죄는 본성이 부패한 것이며 벌을 받아야 하지만 창조된 본성에서 온 것은 아니다. 8-11)

8. 원죄의 정체

원죄는 우리의 본성의 유전적 타락과 부패인 것 같으며 영혼의 모든 부분에 만연되어 첫째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만들고, 다음에는 성경에(5:19) “육체의 일이라고 한 행위를 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점은 분명히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의 본성은 철저하게 타락하고 부패하였으며, 이 때문에 우리는 의와 결백과 순결 외에는 아무것도 용납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당연한 정죄를 받고 있다. 우리가 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죄 없고 책임 없는 우리가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가 그 저주에 함께 말려들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죄책이 있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벌이 우리에게 왔으며, 또한 그가 전염시킨 것이 우리 안에 있어서 이것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가장 명쾌하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증언한다(5:12). 즉 그들은 원죄에 둘러싸였고 그 오점들로 더렵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젖먹이들까지도 모태에서부터 저주를 받았지만 그 책임은 다른 사람의 허물이 아니라 자기의 허물에 있는 것이다. 아직은 그들에게서 불의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씨는 그들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들의 본성 전체는 죄의 하나의 씨앗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당연히 죄로 인정된다는 결론이 된다. 허물이 없으면 고발도 없을 것이다.

둘째, 이 부패는 우리 안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열매-앞에서 이미 언급된 육의 일을 하는-를 맺는데, 이는 마치 뜨거운 용광로에서 불꽃과 불똥이 튀어나오며 샘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는 것과 같다. 원죄를 육욕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적절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람에게 있는 것은 이해력으로부터 의지에 이르기까지 또 영혼으로부터 육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육욕으로 더렵혀지고 가득 차 있다고 하는 것, 보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적으로 인간은 육욕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첨부하는 경우에 그러하다.

 

9. 죄는 인간 전체를 전복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의의 원천을 버린 후에 죄가 영혼의 모든 부분을 점령했다고 나는 말한다. 저급한 욕망이 그를 유혹했으며,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불신앙이 바른 지성의 보루를 점령했고 교만이 심정(心情)의 밑바닥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바울은 부패는 영혼의 일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는 저 죽을 병이 들지 않은 순결한 부분은 없다고 가르치면서, 이 점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로마서 3장은 단지 원죄에 대한 묘사에 불과하다(1-20). 따라서 바울은 동물적 욕망을 없애라고만 명령하지 않고, 거기에 더하여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고 요구한다(4:23). 다른 곳에서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같은 권고를 한다(12:2). 그러므로 영혼의 우수성과 존귀성이 특히 빛나는 부분이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심히 부패하기까지 해서, 치유를 받으며 새로운 본성을 입어야 할 형편이라는 결론이 된다. 여기서 나는 인간 전체가 마치 홍수를 만난 듯이 머리로부터 발 끝에 이르기까지 압도되어 죄를 면한 부분은 하나도 없으며, 사람에게서 출발하는 것은 모두 죄로 돌려야 한다는 것만을 간단히 시사하고자 한다. 바울의 말과 같이, 육으로 향하는 생각은 모두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8:7), 따라서 사망인 것이다(8:6).

 

10. 죄는 우리의 본성이 아니고 착란 상태이다.

우리의 멸망은 하나님이 원인이 아니라 우리의 육의 죄책이 그 원인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시초 상태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타락을 미리 막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더 잘 마련하실 수 있었을 것이고 여기서 불평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점은 후에 적당한 곳에서 논하게 될 예정의 비밀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멸망한 원인을 본성이 부패한 데 돌리는 것을 잊지 말고 본성의 창시자이신 하나님 그 분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이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라고 전도서는 말하고 있다(7:29). 분명히 인간의 멸망은 그 책임을 인간에게만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친절로 의를 얻었음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허무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1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성선천적부패

그러므로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락했으며 부패했지만 본성(천성)에서 타락이 온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우리는 그 타락이 본성에서 흘러 온 것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그것은 처음부터 본성 안에 있었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외보루부터 온 첨가된 성질이라는 것을 가리키려고 한다


한인희의 책요약

한인희의 책요약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6장 하나님의 섭리 더락 2022.08.03 115
35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7장 섭리적 신앙 더락 2022.08.09 103
34 기독교 강요- 1권: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18장 유기된 자에 대한 섭리 더락 2022.08.12 102
» 기독교 강요- 2권: 복음이란?/ 1장 원죄 더락 2022.08.27 103
32 기독교 강요- 2권: 2장 노예의지. 1~17항 더락 2022.09.07 99
31 기독교 강요- 2권: 2장 노예의지. 18~27항 더락 2022.09.07 124
30 기독교 강요- 2권: 3장 중생. 더락 2022.09.16 115
29 기독교 강요- 2권: 4장. 하나님의 사역과 심정 더락 2022.09.20 97
28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개혁신학(2) file 더락 2022.09.21 108
27 질문하는 십대, 대답하는 개혁신학(1) file 더락 2022.09.21 99
26 죄 죽임-존 오웬. 해제 file 더락 2022.09.22 127
25 죄 죽임-존 오웬. 1부 죄 죽임 file 더락 2022.09.23 114
24 죄 죽임-존 오웬. 2부 죄 죽임의 의무 file 더락 2022.09.24 115
23 죄 죽임-존 오웬. 3부 죄 죽임의 본질 file 더락 2022.09.24 114
22 죄 죽임-존 오웬. 4부 죄 죽임을 위한 일반적 지침 file 더락 2022.09.24 117
21 죄 죽임-존 오웬(5). 5부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1) file 더락 2022.09.28 122
20 죄 죽임-존 오웬(5). 5부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2) file 더락 2022.09.28 158
19 죄 죽임-존 오웬(5). 5부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3) file 더락 2022.09.28 173
18 죄 죽임-존 오웬(6) 6부. 죄 죽임의 수단 file 더락 2022.09.30 162
17 기독교 강요- 2권: 5장. 자유의지에 대한 논박(1) 더락 2022.12.06 17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순위 닉네임 포인트
1위 하울림 64150점
2위 예배자 50913점
3위 엔돌핀 41405점
4위 로이 39035점
5위 하늘향기 27407점
6위 돌아온유다 18365점
7위 주정주정 12540점
8위 챨스 11665점
9위 산세리프 8735점
10위 동산위에 7745점


오늘ㅤ
350 / 451
어제ㅤ
2,800 / 4,749
전체ㅤ
492,112 / 1,84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