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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

 

욕심을 복음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것은 욕심의 죄책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책을 더 깊이 참회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찌른 주님을 바라보고 애통하십시오.”

 

9장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1)

 

.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

1. 욕심에 수반되어 있는 위험한 징후들을 살펴보라

욕심이 어떤 치명적인 증상들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징후들을 갖고 있다면, 특별한 치료책이 사용되어야 합니다.

1) 첫 번째 위험한 징후는 욕심이 오래되어 고질화된 경우다.

이 욕심이 우리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부패한 상태로 존재했다면, 곧 상당 기간 우리가 이 욕심을 죽이지 못하거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해 큰 세력과 힘으로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면, 그 욕심은 위험스럽습니다. 그때 지성과 양심도 그 욕심을 이상하게 보고 놀라지 않으며 오히려 늘 대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 욕심에 익숙해집니다. 이렇게 하여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전혀 주목받지 않은 상태에서 수시로 힘을 발휘하거나 권능을 행사합니다. 어떤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이 사람의 이후의 삶이 평안하리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오랫동안 마음속에 거하고 있는 죽임을 당하지 않은 욕심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임하는 죄의 지배 사이를 그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욕심이 자기 속에 그토록 많은 날에 걸쳐 고착되어 거하면서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욕심을 자기에게는 별 수 없는 상태로 만들거나 자기 안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유혹하지 못하게 하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내재하는 욕심을 계속 편안하고 조용히 내버려 두면 완고하고 완악해집니다. 욕심에 대해 오래 있었다고 항변하며 시효를 주장한다고 해도, 쉽게 쫓겨나는 동거인이 아닙니다. 욕심은 절대로 오래 되면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날마다 죽이지 않으면 항상 왕성하게 활동할 것입니다.

 

2) 두 번째 위험한 징후는 욕심을 묵인하고 타협하는 경우다

복음의 강력한 능력으로 욕심을 죽이려고 힘쓰지 않고, 욕심을 묵인하며 욕심과 화평을 유지할 구실을 은밀하게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징후가 드러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말해 봅시다.

첫째, 죄를 파괴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죄에 대한 생각들 곧 상념들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사람은 자기 마음을 살펴 죄와 욕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은 상태 속에 있다는 증거를 찾아냄으로써 욕심을 묵인하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설교를 듣고 양심이 가책을 받아 마음이 찔렸을 때,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모든 가증한 죄악에 빠져 철저하게 파멸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둘째, 죽임을 당하지 않은 죄에 은혜와 자비를 베풀거나 죄를 죽이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을 때 이런 속임이 진행됩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은밀한 생각들을 갖고 있을 때는 나아만이 림몬의 신당에서 경배했을 때(왕하5:18)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행하겠습니다. 하오니 이 일에 대하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데, 이것은 참으로 서글픈 상태입니다.

속임에 빠진 마음은 가증한 일들을 무마시키는데 이와 다른 무수한 방법과 간계들을 수시로 써먹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죄로 인해 마음속에 죄를 은밀히 즐기는 성향이 지배하고, 비록 그의 의지는 죄에 전적으로 이끌린 상태는 아니지만 죄를 향한 약간의 욕망을 갖고 있을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지도 않고 지체 없이 죄를 범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죽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위험한 징후는 죄의 속임이 빈번하게 성공하는 경우다.

죄가 외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죄가 성공한 경우입니다. 의지의 선택에 의해 행해진 일이든 아니면 무심코 행해진 일이든 간에 똑같습니다. 무심코 행하는 것 자체도 어떤 면에서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깨어서 주의하고 있어야 할 상태에서 부주의하고 나태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마음의 악을 합리화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악은 대부분 그들이 동조한 결과로 부지중에 들어온 것이며, 그들의 마음이 깨어 있지 못한 게으름의 결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네 번째 위험한 징후는 형벌이 두려워 죄를 대적할 경우다.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마음속에 있는 죄와 욕심의 유혹을 대적하는 사람은, 만약 형벌이 없다면 기꺼이 죄를 범할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복음 원리에 순종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은 죄를 죄로서 싫어하는 냉철한 혐오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죄의 시험을 반대하고 욕심의 모든 역사와 다툼과 공격에 맞서 싸우는 법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떤 사람이 욕심의 힘 아래 떨어져 단지 율법만으로 욕심을 대적하고 있다면, 그래서 율법의 무기인 지옥과 심판을 가지고 욕심을 대적하는 데 그치고 복음의 무기들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죄가 큰 힘과 세력으로 그의 의지와 정서를 압도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실로 죄를 잠시 유보시키는 상태는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 상태에서 속히 벗어나지 않으면 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복음의 원리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율법의 동기들이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5) 다섯 번째 위험한 징후는 하나님이 징계로 욕심을 허용하셨을 경우다.

하나님이 수시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이전 죄들, 곧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교정시키기 위해 끔찍한 어떤 욕심이나 죄의 힘 아래 두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신자가 악한 욕심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의 손인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마음과 삶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죄에 떨어지기 전 영혼의 상태와 조건이 어떠했습니까? 의무를 게을리 했습니까? 무절제한 삶을 살았습니까? 큰 죄를 범하고 죄책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옛 죄를 기억나게 하시려고 새로운 욕심을 보내시거나 새로운 죄를 허용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우리 것이라면 어서 일어나 하나님을 찾읍시다. 주위에 진노의 폭풍이 불고 있는데 우리가 여전히 잠들어 있는 꼴이니 말입니다.

 

6) 여섯 번째 위험한 징후는 이미 처단당한 욕심이 계속 저항할 경우다.

그의 탐심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57:17). 하나님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욕심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곧 환난과 버려둠 등으로 처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것에 저항했습니다. 이것은 슬픈 현실로서,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단순한 주권적 은혜(이어지는 구절인 18절에서 하나님이 표현하시는 것처럼) 밖에 없고, 사람은 이 은혜에 대해 아무 권한이나 자격이 없습니다.

죄를 죽이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로 죄를 죽이지 못할 것입니다. 특수한 방법이 취해져야 합니다. 이 특수한 방법의 첫 번째 구체적 지침은 곧 우리가 맞서 싸우고 있는 욕심이나 죄가 이 위험한 징후 가운데 어떤 징후들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10장 죄 죽임을 위한 개별적 지침(2)

 

2. 죄의 죄책과 위험성과 해악성을 분명히 유념하라

이는 우리를 괴롭히는 죄책과 위험성과 해악성에 대한 명백하고 지속적인 의식을 지성과 양심 속에 갖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1) 죄책을 명백히 의식하라

마음을 지배하는 정욕의 속임 가운데 하나는 죄책을 경홀히 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을 올바르고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지성을 이끄는 무수한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4:11)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성경에서 자주 쓰이는 의미처럼, 지성 또는 오성을 가리킵니다. 정욕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는 전체적으로 이런 일을 행하지만, 부분적으로는 거듭난 사람들 속에서도 이런 일을 행합니다. 또 여호와는 에브라임에 내린 조처가 별로 효력이 없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7:11)라고 하십니다. 에브라임은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는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이 범한 가증한 죄책을 아주 오랫동안 깨닫지 못하였고, 하나님은 다윗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셨고, 선지자가 비유를 통해 변명과 위선을 책망했을 때, 다윗은 죄책감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 속에서 정욕이 원래 하는 일입니다. 정욕은 지성을 어둡게 해서 죄책을 바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따라서 죄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관심사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죄책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움을 주는 몇 가지 사항을 보겠습니다.

 

(1) 죄의 세력은 은혜의 힘에 의해 약화되지만, 내재하는 죄의 죄책은 악화되고 강화된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그와 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누구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은혜를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 범하는 죄가 그토록 크다면, 은혜를 받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악과 그 악의 죄책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2) 하나님은 자기 종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욕심의 활동을 더 악하게 보신다.

그렇기에 성도들이 죄를 더 강하게 대적하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수시로 죄를 따르지 못하도록 성도들을 낮추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실족한 자기 백성을 다루실 때, 그들의 신앙고백을 제쳐 두고 그 근원으로 데리고 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3:1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는 네가 고백한 것과 확실히 다른 일을 했고, 이 일로 너는 가증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통해 죄가 마음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힘을 얻고 득세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2) 죄의 위험성을 유의하라

죄가 갖고 있는 위험성은 다양합니다.

(1) 마음이 완고하게 되는 위험에 처한다.

히브리서 313절에서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조심하되, 모든 수단을 사용하고, 너희 유혹을 헤아리며, 부지런히 살펴라. 죄 속에는 반역이 있고 속임수가 있으니, 곧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도록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경향이 있느니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완고하게 된다는 말은 극도로 곧 철저하게 외고집이 된다는 뜻입니다. 죄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령이 완고해지면 영혼과 죄에 대해 말해도 아무 관심도 없고, 의무, 기도, 설교 듣기, 성경읽기를 건너뛰며, 마음은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 죄는 아주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고, 시시한 것으로 간과될 것입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 상태는 악화됩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양심을 무감각하게 하며 지성을 눈멀게 하고 감정을 우둔하게 만들며 영혼 전체를 속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욕심이 일으키는 결과로서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2) 성경이 보응”, “심판”, “이라고 부르는(89:30-33) 심각한 일시적 징계를 받게 되는 위험에 처한다.

마음속에 있는 이 가증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겠지만, 채찍을 들고 찾아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고 용납하시지만, 우리의 거짓에 대해서는 보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다루실 때 그리고 우리로 인해 하나님이 화내시는 것을 양심이 증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영혼에 쓴맛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다루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이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완고함 속에 있는 것인지 저는 두렵습니다.

 

(3) 한평생 평강과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에 처한다.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힘 있게 걸어가는 것은 위대한 약속인 은혜 언약의 정수입니다. 평강과 능력이 있을 때 우리 영혼의 생명이 유지됩니다. 평강과 능력이 없으면 사는 것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죽임을 당하지 않은 욕심은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이 두 가지 곧 평강과 능력을 박탈해 버립니다(57:17; 5:15). 따라서 과거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두려움이 우리의 두려움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할 만한 힘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도할 때 슬프고 연약함 때문에 괴롭다면, 이 위험이 우리의 머리 위에 놓여 있는 상태라는 것을 유념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파멸시키지는 않겠지만, 이런 상태 속에 집어넣으시고(고통, 공포, 고뇌, 불안, 두려움, 당혹감 등등) 거기서 우리 자신의 파멸을 신속히 그리고 생생히 깨닫게 하실 것이라는 것, 이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합니다.

(4) 영원한 멸망에 대한 위험이 있다.

첫째, 죄 안에 계속 거하는 것과 영원한 멸망은 분명히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죄에 계속 머무는 상태로부터 구원하기로 결심하시지만, 죄 안에 계속 거하는 자들은 절대로 멸망에서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내재하는 죄의 힘 아래 있다면, 그에게는 멸망에 대한 위협과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에 대한 경고가 주어집니다(3:12, 10:38). 갈라디아서 68절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둘째, 죄의 힘에 크게 휩쓸려 있는 사람은 그 상태에서는 멸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언약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멸망은 당연히 그에게 큰 두려움이 될 수 있고, 그는 삶의 길의 끝에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정말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자가”(8:4)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인격을 증명하는 최고의 증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악한 인생이 파멸로 끝날 것에 대해 판단하는 것 역시 그의 의무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무신론자입니다.

 

3) 죄의 해악성을 고려하라

죽임을 당하지 않은 욕심에 수반되어 있는 다양한 해악성 가운데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1) 죄는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성령을 근심시킨다.

성령은 죄로 인해 근심하십니다(4:25-29).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처소로 삼고, 거기서 우리 영혼이 바라는 것을 다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자신이 파괴해야 할 원수들과 대상들이 들어와 있을 때 근심하십니다. 총체적인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고 마음과 영을 철저히 순결하고 깨끗하게 보존하는 데 힘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그들 안에 은혜의 성령이 거하고 계셔서 지속적으로 그들의 마음이 추구해야 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자신의 성전이 더러워지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될 때 기뻐하시는 것만큼 삶에 더 큰 동기와 자극은 없습니다.

 

(2) 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또다시 상처를 입힌다.

죄로 인해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피조물이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취를 감추고, 그리스도의 대적이 득의양양하게 됩니다.

 

(3) 죄는 한평생 사람의 유익을 빼앗아 간다.

이때 사람이 하는 일, 수고, 노력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가 거의 어렵습니다.

만일 그가 설교자라면, 하나님은 그의 사역에 치명타를 가해 마치 불 속에서 일하는 상태가 되게 하심으로써, 아무 소득이 없거나 하나님을 위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가슴 속에 영혼을 잡아먹는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순종의 뿌리 곁에 벌레처럼 기생하면서 날마다 뿌리를 갉아먹고 약하게 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이유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두렵습니다. 모든 은혜를 활용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이 이 욕심에 의해 저지를 당합니다. 아무리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영혼 속에 욕심이 습관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 욕심을 대적하는 데 유효한 지침입니다. 욕심의 죄책과 위험성과 해악성을 성찰하고 이에 대한 생각들을 늘 염두에 두라. 이 사실들을 깊이 묵상하라. 항상 마음을 기울이고 주목하라. 이 사실들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까지, 그래서 욕심에 대해 전율이 느껴질 때까지 항상 숙고하라. 절대로 제쳐 두거나 무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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