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이란 영어 단어는 헬라어의 두 단어가 합쳐져서 되었는데 “마지막 일들에 관한 가르침”이란 뜻이다. 충만한 의미에서의 성경적 종말론은 앞으로 종종 부르게 될 “시작된 종말”과 “미래의 종말”의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제 1장 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적 개관
종말론이란 성경 중 어느 한 부분이나 구석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다니엘서나 요한 계시록과 같은 책들에서만 종말론이 발견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종말론이란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일관하여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은 종말론적 소망이며 따라서 종말론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갖고 있던 신관(新觀)과도 일치하고 있다. 옛 벨하우젠 학파는 종말론이란 바벨론 포로 후기 시대에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학계의 방향은 다른 쪽으로 쏠리고 있으며 종말론이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이 인식되고 있다. 많은 수의 학자들이 구속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종말론적인 희망을 낳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장차 계속될 모든 구속의 역사는 이미 어머니의 약속(cf.창 3:15) 속에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구약의 계시는 앞을 향하고 있고, 앞을 가리키고 있고, 결국 약속된 구속자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 3:15에는 여인의 후손으로만 묘사되고 있는 장차 오실 이 구속자는 창세기 22:18(참조, 26:4; 28:14)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지칭되고 있다. 더욱이 창세기 49:10은 구체적으로 이 구속자가 유다의 지파로부터 나올 것을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구약 계시의 후반부에서 이 구속자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삼하 7:12-13).
왕정 정치제도를 수립한 후에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 가지 특별한 직분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선지자직(신 18:15), 제사장직(시 110:4), 왕직(슥 9:9)이었다. 장차 오실 구속자는 이상의 세 가지 직분의 완성된 화신으로 기대되었다.
장차 오실 구속자는 선지자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왕이실 것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이사야서에서는 그 구속자가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으로 묘사되고 있다(사 42:1-4; 49:5-7; 52:13-15; 53장 전체). 특별히 이사야 53장은 장차 오실 구속자를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구약의 신자들이 내다보고 기대했던 “장차 오실 구속자”는 최소한 후기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자기 백성을 구속하기 위해 그들을 위해 고난을 받을 자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구약이 장차 오실 구속자를 묘사했던 또 하나의 명칭은 사람의 아들(人子)이다. 특별히 구속자 대망사상은 인자란 용어를 통해 다니엘 7:13-14에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약에 있어서 인자는 특별히 메시야와 동일시되고 있다. 종합해서 말하면 구약의 신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과 형태로서 장차 자기 백성과 아울러 이방인까지도 구원하시려 미래에 (구약적 표현을 빌리자면 “마지막 날들에”) 나타나실 한 구속자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참고, 벧전 1:10-11).
구약의 종말론적 개관을 표현해 주는 또 다른 계시적 개념은 하나님의 왕국이다. 비록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용어는 구약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특별히 시편과 예언서들에는 하나님은 왕이시라는 사상이 흐르고 있다(신 33:5; 시 85:3; 145:1; 사 43:15; 시 29:10; 47:2; 96:10; 97:1; 103:19; 145:11-13; 사 6:5; 렘 46:18). 그러나 인간의 반역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불완전하게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서만 아니라 온 세상에 의해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하게 경험될 수 있는 한 날을 고대하게 되었다.
장차 올 왕국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은 특별히 다니엘에서였다(단 2장). 다니엘 7:13-14에서 보여주듯, 파괴되지 않을 나라의 영원한 통치권이 사람의 아들(人子)과 같은 이에게 주어진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미래의 왕국이 장차 오리라는 것을 예언할 뿐만 아니라 이 왕국을 사람의 아들(人子)로 묘사된 구속자의 오심과 연관을 시키고 있다.
구약의 종말론적 성향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또 하나의 개념은 새 언약이다. 언약이란 개념은 구약 계시의 중심점이다. 그러나 유대 백성들은 우상숭배와 범죄들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다. 예레미야의 외침과 예언은 주로 저주와 심판의 선언이었으나 동시에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새 언약을 맺을 것임을 잊지 않았다(렘 31:31-34).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새 언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다고 신약성경은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히 8:8-13; 고전 11:25).
구약에 암시되고 있는 많은 종말론적 개념들 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다(렘 23:3; 사 11:11 등등).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실은 선지서들 가운데 예언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들은 한결같이 윤리적 측면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에스겔(36:24-28)과 이사야(24-27장)는 분명히 지적하기를 이스라엘의 회복은 오직 이스라엘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봉사에 재헌신하는 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구약의 선지자들) 회복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 회복이란 정결케 되고 의롭게 될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전했던 멸망과 회복의 메시지는 죄로 물들어 타락했던 그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되었던 바로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론이란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태동되었다. 아마 선지자들이 가졌던 윤리적 관심의 가장 중요한 결과란 종말론적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대상은 이스라엘 민족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믿고, 정결케 된 남은 자라는 선지자들의 확신이었으리라.
우리는 특별히 요엘서에서 모든 육체 위에 내리실 성령의 부으심에 관한 예언을 발견하게 된다(욜2:28-29). 그러므로 성령의 부으심은 구약의 신자들이 큰 갈망을 가지고 바라본 미래의 지평선 위에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이었다. 요엘은 자기의 예언을 통하여 수천 년 동안 제각기 독립적으로 발생할 사건들을 하나의 단일한 환상 속에서 함께 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소위 “예언적 전망”(prophetic perspective)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예언자적 관점으로 장차 일어날 수많은 사건들을 하나의 환상으로 바라보는 현상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어진다.
요엘의 구절들은 우리로 하여금 구약의 또 다른 종말론적 개념을 발견하게 하는데 그것은 “주의 날”이다. 선자자들의 외침 가운데서 “주의 날”이란 표현은 신의 심판이 도래할 최후의 종말론적 심판의 날을 지칭하고 있다(참고, 암 5:18; 사 2:12, 17; 습 1:14-15). 그러나 주의 날은 단지 심판과 재난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종종 그날은 구원도 가져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참고, 욜 2:32; 말 4:2).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예언된 “주의 날”은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과 분노의 날로, 다른 이들에게는 구원의 날로 나타난다.
비록 주의 날이란 개념이 종종 암울한 어둠의 그림자를 연상하게 만들곤 하지만 구약의 종말론적 개념으로서 좀 더 밝은 면을 보여주는 말이 있으니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문구이다. 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적 소망은 항상 땅에 관한 구절과 자주 연관되어진다. (참고, 사 32:15; 35:1, 7; 11:6-8, 9).
구속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항상 땅이라는 어휘를 포함시키고 있다. 히브리적 사고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히브리 예언자들은 땅이 단지 인간이 자기들의 평범한 일들을 수행하는 하나의 무감각적인 작업장으로 생각지 아니했고 오히려 땅을 신적 영광의 표현장(場)으로 바라보았다. 헬라적 사고는 구속을 영적인 것, 비육체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했으나, 구약의 사고는 비육체적, 비물질적, 순전한 “영적” 구속을 소망하고 있다고 어느 곳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 땅이란 인간존재를 위한 신적으로 예정된 장(場)이다. 더욱이 땅이란 죄로 인해 발생 된 모든 악들과도 연관이 있는 곳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의 도덕적 삶과 자연 사이에는 상호 관련성이 있다. 그러므로 땅도 하나님의 최종적 구속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가 여러 다양한 개념들을 종합적으로 묶어 생각한다면 우리는 구약의 신자들이 다음과 같은 종말론적 실재들이 미래에 일어나게 될 것을 바라보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1) 장차 오실 구속자 (2) 하나님의 왕국(나라)
(3) 새 언약 (4) 이스라엘의 회복
(5) 성령의 부으심 (6) 여호와의 날(주의 날)
(7) 새 하늘과 새 땅
물론 구약의 신자들은 이상의 기대들이 언제, 어떻게 성취될까에 관해 분명한 대답들을 갖고 있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예언적 전망”이라는 특수한 관점 아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계된 일들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계된 일들과 함께 섞어서 미래를 내다 보았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서 메시야가 장차 오실 것이라는 사상은 신약성경에 와서는 두 가지 단계로 성취되었음을 살펴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두 단계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분명치 않았던 것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더욱 분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말해 두고 싶은 것은 구약 신자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종말론적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구약의 성도들이 자기들 앞에 놓여 있는 경주를 용기 있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바라보는 신앙 때문이다(참고, 히11:10, 13, 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