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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역사의 의미

벌코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이 역사의 의미에 대한 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이 역사의 의미에 관한 그 해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우리가 배격해야 할 역사에 관한 두 가지 해석들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역사해석론은 고대 헬라인들 중에서 발견된다. 헬라인들은 소위 역사의 순환적 견해”(cyclical)를 갖고 있었다. 모든 일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발생되며 그래서 오늘날 일어나는 것들은 미래 어느 날엔가 다시 반복되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사 그 자체는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시간과 역사란 결코 실현되어질 수 없는 이상(理想)들의 불완전한 표현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시간과 역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 시간과 역사로부터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영역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헬라적 사고에 있어서 시간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상향적 선으로 이해될 수 없었고 오히려 하나의 순환주기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시간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노예의 상태나 혹은 하나의 저주 상태로서 이 땅에서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이 계속해서 재생하는 영속적인 순환과정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것이 바로 헬라 세계의 철학적 사고가 시간의 문제를 갖고 씨름하였던 이유이다. 그것은 또한 구원을 쟁취하려는 모든 헬라인들이 영원한 순환과정으로부터 자유케 되며 시간 그 자체로부터 해방되어지는 것을 구원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추구해 나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곧 우리가 시간의 순환적 과정에 속박된 존재로부터 시간이 제거된 동시에 항상 가려면 갈 수 있을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저 너머의 세계, 곧 피안(Beyond) 속으로 넘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헬라인들의 역사관은 역사를 하나님의 목적의 완성과 그 목적을 향한 움직임으로 보는 기독교적 사관과는 병립할 수 없다.

배격되어야 할 두 번째 유형의 역사해석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의 역사론이다. 이런 유형의 실존주의에게 있어서 역사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단지 의미 없는 사건들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이라곤 아주 예민한 개인주의밖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된다. 즉 각 개인은 중대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허구의 존재로부터 참된 존재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할 뿐이다. 그러므로 역사란 전체적으로 의미를 상실한 공허한 것으로 남게 된다. 실존주의자들의 역사관 역시 기독교적 견해와 병립할 수 없다. 기독교는 각 개인의 결단을 중요시 하면서도 역사에 있어서의 의미를 본다.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중요한 특성들은 무엇일까?

1. 역사는 하나님의 여러 목적들을 이루는 작업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들을 역사 속에 나타내신다. “구속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의미한다. 구속이란 하나의 역사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구속은 인류의 역사, 한 국가(이스라엘)의 역사, 한 인간(나사렛 예수)의 역사, 한 움직임(신약의 기독교)의 역사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역사아니 이 역사들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 즉 그것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목적을 나타내며 드러내고 있다.

 

 

2. 하나님은 역사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신다(참고, 103:19; 대하 20:6; 21:1; 1:11; 17:26). 이것은 그가 인간들을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즉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이 항상 유지되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들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 인간들의 악한 일들까지도 조정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요셉의 이야기다(참고, 50:20). 신약에 나타난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최상의 예증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참고, 4:27-28).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지배 때문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일도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의 핵심이 되었으며 인류에 대한 축복의 최상의 원천이 되었다(참고, 76:10).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 방법으로든 저 방법으로든지간에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참고, 10:5, 12, 24-27).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기에 역사는 그 의미와 방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항상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런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 믿음의 중추적 양상인 것이다.

 

 

3.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이다.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스 베르쟈예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오심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 사실을 구성하고 있다. 이 사실은 독특하며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그러기에 역사적인 모든 것들의 본질적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적인 세계 역사의 점을 이루고 있다.” 말한다. 오스카 쿨만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후로 하여 해수를 계산한다는 사실이 신학적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의 오심이 인류 역사의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사건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역사의 중심점이라는 사실은 이 중심적 사건으로 과거의 모든 것이 성취되어질 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것도 결정된다.” 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역사 속의 그리스도의 중심성이 요한계시록 5장에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오직 어린양만이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그 일곱 인봉을 떼기에 합당했다-여기서 인들을 뗀다는 것은 단지 역사의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사건들을 집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에 관해 말씀하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7:28)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의 요한은 아직도 그리스도께서 지금 소개하시는 새로운 시대의 왕국이아닌 구 시대에 속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의 왕국의 성도가 된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에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골로새서 1:13과 에베소서 2:5-6에서도 우리가 새로운 세대에 살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로마서 12:2에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이 세상(세대)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육체영혼과의 대조는 두 가지의 세력 영혹은 혹은 두 가지의 세대, 즉 옛것과 새것에 속하는 삶의 형태 사이의 대조이다. “옛사람새사람의 대조 역시 마찬가지다. 신약 시대의 신자는 죄의 옛 세대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새로운 세대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기 때문에 새 세대는 정말로 이미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는 전과 같은 세상일 수가 없다. 즉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일 어느 사람이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거나 알지 못한다면, 그는 진실로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5. 역사의 모든 것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 가고 있다-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비록 그리스도께서 새 세대를 여셨지만, 그 세대의 최종적 결정체는 아직도 미래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를 신에 의해 예정된 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에는 반드시 그의 재림이 뒤따르게 된다. 이미 건설된 하나님의 왕국은 아직도 그것의 절정상태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비록 많은 구약 예언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예언들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의 부활, 심판의 날,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사건들이 포함되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역사의 극치점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이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을 우주적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하늘과 땅이란 표현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성경의 표현방법이므로 구속의 목표는 다름 아닌 오늘날 과학자들이 우주라고 부르는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참조, 3:17-18; 8:19-23). 죄로부터의 구속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참조, 1:9-10; 1:19-20).

우리가 이 시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가 목표 지향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적인 역사해석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들이 신문기사에서 큰 표제를 읽거나 뉴스를 듣거나 뉴스 잡지를 읽을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항상 역사를 지배하고 있으며 역사는 점진적으로 그것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1) 현세대의 특징적인 활동은 선교사역들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하나님의 왕국을 새로이 시작하셨다면 또한 그가 우리에게 진실로 위대한 선교 지상명령을 주셨다면(28:19-20), 교회가 해야 할 위대한 사역은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즉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2) 우리는 이미아직사이에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현세대에 독특한 맛을 부여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 시대의 신자들이 감히 알지 못했던 축복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세상 여정에 마지막 끝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쟁취하셨기에 우리 주변의 세상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의 승리의 증거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최종적 절정이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역사 속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승리를 반영하고 있지 않은 듯한 많은 일들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날까지 역사는 이러한 모호성에 의해 계속될 것이다.

 

 

(3) 역사 속에는 두 줄기의 발전이 있다.

이미아직사이의 긴장은 그리스도의 초림 이래로 세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성장과 발전과 나란히 병행하여 악의 왕국의 성장과 발전을 우리가 동시에 볼 수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참조, 13:24-30; 36:43). 벌코포는 이 두 줄기의 병행적 발전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그리스도인과 적그리스도인이라는 두 줄기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인류역사의 종말 직전에 최후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역사를 전체로서 보기 위하여는 두 개의 줄기를 함께 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역사의 모호성을 보게 된다. 역사는 악에 대한 선의 간단한 승리를 계시하지도 않으며, 선에 대한 악의 전적 승리를 계시하고 있지도 않다. 악과 선은 나란히 계속해서 존재한다. 현세대 동안 이 둘 사이의 알력과 투쟁이 계속되어지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 싸움의 궁극적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은 이미 패한 전쟁을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4) 우리의 역사적 판단들은 모두 잠정적이다.

이것은 역사의 모호성을 넌지시 알리고 있다. 우리는 결코 절대적으로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선하다 혹은 악하다, 또한-그 사건이 선과 악의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면-악이 지배적이다, 선이 지배적이다라고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우리는 종종 역사적 운동들과 세력들을 단순히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종종 말했듯이 세상은 종종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좋은 경우가 있고 반면에 교회도 우리가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더 악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들은 단순히 흑백논리로 설명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여러 층의 회색들로서 표현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판단들이 잠정적이라고 해서 우리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역사적 사건들에 관해 일체 판단하지 않는 것보다는 판단의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판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

 

 

(5)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는 근본적으로 낙관적이다.

불행히도 그리스도인들은 현세대에 대해서 종종 과도하게 비판적이다. 그들은 그들의 강조점을 그리스도의 지배의 명백한 증거 위에 두기보다는 아직도 세상에서 발견되는 악한 것들에 두고 있는 경향이 있다. 벌코프는 그리스도인의 문화에 대한 비관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세상 속에 하나님의 왕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오늘날 우리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제한하여 단지 예수 자신과 개개 신자의 관계로만 생각하며, 그리스도와 세계의 사건들돠 그리고 그리스도와 우리의 일상생활의 연관관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아주 나쁜 종류의 경건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현세대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의 표징들을 배은망덕하게도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벌코포는 역사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의 현재적 통치와 그리스도의 승리 등에 관해 공정치 못한 의견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이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이 비록 그에 대해서 악한 쪽으로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의 삶 속에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믿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그는 비록 세상 사건들이 종종 하나님의 뜻에 거스려 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역사는 하나님의 목표를 향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6) 이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에는 불연속 상태뿐만 아니라 연속 상태도 존재한다.

다가올 세대의 능력들이 이미 현세대 속에서도 활동하고 있다(참조, 고후 5:17; 3:1; 2:6). 그러므로 신자의 기독교적 경험 속에는 이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에 참된 계속성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의 유산들이 하나님의 밝은 내일 속에서도 우리와 계속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또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가올 새 땅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며 현재의 땅을 새롭게 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현재의 문화와 다가올 세상의 문화 사이에는 불연속 상태뿐 아니라 연속 상태가 있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정말로 이제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왕국을 좀 더 완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생에 있어서의 우리의 노력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도 그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학과 문화의 열매들이 새 땅에서도 역시 발견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죄에 대한 우리의 싸움들-개인적이든 제도상의 문제이든-우리의 선교사역, 좀더 두드러진 그리스도인 문화를 세우려는 우리의 시도 등은 이생을 위해서뿐 아니라 다가올 세상을 위해서도 가치가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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