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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중간상태

중간상태란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 동안에 죽은 자들이 처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어거스틴(Augustine) 시대 이후로 기독교 신학자들 및 중세 시대에도 죽음과 부활사이 기간 동안 인간의 영혼들은 구원의 완성이나 파멸의 절정을 기다리면서 안식을 취하거나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가르쳐 왔다. 특히 그로인해 연옥 교리가 생기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개혁자들은 연옥설을 반대하면서도 중간상태의 교리는 계속 지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중간상태 교리는 신랄한 비평을 받게 되었다. 중간상태의 교리에 대하여 최근의 학자는 루터교 신학자인 폴 알타우스(Paul Althaus, 1888~1966)이다. 그는 중간상태 교리를 반박하면서 말하기를, 이 교리는 부활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게 하고 있다. 즉 사람이 죽음 후에 받게 될 개인의 축복들을 강조하게 되면 그는 결국 마지막 날의 중요성을 더욱더 감소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는 개인적 축복만을 강조하게 되고 우주적 구속, 왕국의 도래, 교회의 완성 등과 같은 개념들을 무시하게 되어버린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는 먼저 몇 가지 사실을 인정한다. 성경은 중간상태에 관해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신약성경이 중간상태에 관해 말하는 강도가 겨우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벌카우워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 인간은 파멸되는 것이 아니며 신자는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충분히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성경의 증거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이 장의 후반부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통일체이며 몸과 영혼”(10:28) 또는 몸과 영”(고전 7:34; 2:26)이 함께 속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죽음은 몸과 영혼 사이에 일시적 분리를 가져온다. 성경은 인간들의 영혼들또는 영들이 죽음과 부활 사이 기간 동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고 종종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존재상태는 잠정적이며 일시적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중간상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후에도 인간은 스올이라고 불리우는 죽음의 영역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흠정역(KJV)은 히브리 단어인 스올을 grave(무덤: 31), hell(지옥: 31), pit(구덩이: 3)으로 다양하게 번역했다. 벌코프는 스올에 대한 삼중적 의미를 죽음의 상태, 무덤, 지옥으로 제시한다.

 

(1) 일반적으로 스올은 사자(死者)의 영역을 의미하는데 상징적으로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참조, 37:35; 42:38). 스올은 문빗장을 갖고 있으며(17:16), 어둡고 컴컴한 곳이며(17:13),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스런 식욕을 갖고 있는 괴물로서(27:20; 30:15~16; 5:14; 2:5) 묘사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스올을 생각한다면 경건한 자들이나 불경건한 자들 모두가 죽은 자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사망 시에 스올로 내려간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스올은 때때로 무덤이라고 번역되어진다(참조, 141:7).

(3) 루이스 벌코프와 윌리암 쉐드는 스올이 형벌의 장소 혹은 지옥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9:17; 55:15; 15:24). 그러나 인용된 구절들은 별로 설득력이 있는 구절들은 아니다.

 

그러므로 스올이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음부의 권세 아래 있지만 경건한 자들은 그러한 권세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신앙 속에 그 자태를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시편 49:415절을 통해, 죽은 후에 악한 자들의 운명과 경건한 자들의 운명 사이에 극한 대조가 있을 것을 이 구절은 암시하고 있다. 경건한 자들은 사망의 권세에서 구속될 것인데, 그 상태는 최소한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의 약속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시편 16:10이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행한 설교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2:27, 31),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적용시키고 있다. 다윗은 그 당시 치명적 위험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이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도행전 2:30~31에서 베드로는 다윗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이미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하데스(구약의 스올에 대한 신약의 용어: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 만일 시편 16편의 말씀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언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면 이 말씀은 다윗에게 있어서 그 자신의 부활을 소망하고 있다는 의미를 갖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인용된 두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음부로부터의 구원의 소망이 이미 구약 시대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참조, 5:24; 23:10; 17:15).

 

시편 73:24을 보자.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혹은 존귀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악한 자의 분깃과 경건한 자의 분깃을 대조하고 있는 이 시편의 전체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아삽의 신앙이 무덤 저편 너머를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지금 사악한 자들이 흥왕해 보이지만 결국 멸망케 될 것이라고(19, 27) 아삽은 말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비록 연단을 겪고 있지만(14) 이생 후에는 영광중에 영접받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26).

 

신약성경은 이 주제에 관하여 구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기보다는 오히려 구약의 가르침을 보완하고 확장하고 있다. 신약은, 인간은 사망 시에 멸절되지 않고 음부(하데스)나 낙원 또는 아브라함의 가슴이라고 불리는 축복의 장소 중 어느 한 곳에서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데스는 스올의 70인경의 번역이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음부(하데스)의 의미는 구약에서의 음부(스올)의 의미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약의 스올은 죽은 자의 영역 혹은 때때로 무덤을 상징했다. 그러나 신구약 중간기 동안에 스올의 개념은 어떠한 변화를 겪었다. 중간기 동안의 랍비 문헌들이나 묵시문학적 작품들에는 지하세계에서 경건한 자들과 불경건한 자들 사이에는 공간적 분리가 일어나게 된다는 사상들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몇몇 신구약 중간 시대의 작품들 속에는 하데스(음부)란 단어는 지하세계에서 불경건한 영혼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데스란 단어의 신약성경의 사용은 어느 정도 이런 개념의 발전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데스는 죽은 자의 영역을 지칭하고 있다(2:27, 31). 신약에 나타난 하데스는 중간상태를 가리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데스는 대부활 시에 하데스가 잡고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 놓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사후에 완전히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역으로 간다.

이러한 죽은 자들의 영역속에서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사망이 목자가 될 것이며, 사망의 돌봄 아래 그들은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신약은 불경건한 자들이 죽은 후와 부활 전 사이 기간 동안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16:19).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의 영역에 내버림을 당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자신들이 스올의 권세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강렬한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약은 이런 소망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후에 경건한 자들이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6:25).

 

신약은 죽음과 부활 사이에 불경건한 자들의 상황이 어떠할 것인가에 관해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신약의 주된 관심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사후에 하데스에서 고통을 겪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29절에 의하면 베드로는 불의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날까지 형벌 아래 묶어 놓으신다(문자적으로는 형벌을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따.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란 문구는 불경한 자가 당하는 형벌이 최후의 형벌로 선언된 형벌이 아니라 최후 심판날 바로 직전까지 계속되는 형벌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부터 배웠던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있으며 또한 계속되는 형벌을 불경건한 자들이 그들의 죽음과 심판의 날 사이 기간 동안에 겪게 된다는 사실도 말해 주고 있다.

 

신자로서 죽은 자들(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죽음과 부활 사이 기간 동안에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까에 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세 개의 중요한 핵심 성경 구절을 보자.

 

첫 번째 구절은 누가복은 23:42~43절이다. 이 강도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에 이렇게 간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오늘날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이란 단어는 이곳에서와 고린도후서 12:4; 요한계시록 2:7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고린도후서 12:4에서의 낙원은 2절에 있는 셋째 하늘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낙원은 축복받은 죽은 자들의 영역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처소인 하늘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회개한 강도에게 그가 바로 그날 하늘의 무한한 축복상태 속에서 죽음과 즉시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것이며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확증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그의 왕국에 들어가게 될 때인 그의 재림 시에 그가 강도를 기억하실 것이라는 사실도 포함한다. 여기서 영혼이 잠잔다는 사상은 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두 번째 구절은 빌립보서 1:21~23이다. 바울은 21절에서 자기 속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담대한 확신을 나타내고 있다. 왜 죽음을 유익이라고 부르는가?

23절은 이 문제에 관해 밝은 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 “나의 소망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그가 떠나서 죽는 순간이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순간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마지막 날에 있게 될 부활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는 좀더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3:20~21).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죽는 순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덧붙여 말하기를, 그러한 상태는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사후에 그가 잠자는 상태나 무()의 상태로 들어갈 것이라는 사상을 전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상태 속에서는 비록 완전치는 못하다 할지라도 어떻게 영혼이 수면을 취하거나 영혼이 전혀 없어져 버린 상태에서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의식할 수 있겠으며, 또한 그때의 상태가 현재보다 훨씬 더 좋다고 의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내용과 회개한 강도에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 사이에 현격한 일치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란 문구는 바울이 중간상태에 관해 알고 있는 것 뿐인데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죽어가는 강도에게 하신 말씀을 뒤따를 뿐이다(23:43).

 

세 번째 구절은 고린도후서 5:6~8이다. 앞으로 무너지게 될 땅 위의 장막이란 환난과 고통으로 가득 찬 땅 위의 현재적 존재양식을 뜻하고 있다(4:7~17).

여기서 우리가 당면한 해석의 문제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란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세 가지 견해로 종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란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 사이에 있는 일종의 중간적 몸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얻게 될 부활육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란 중간상태 동안에 하늘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눌 신자들의 영화로운 존재함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첫 번째 견해에 대해 많은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은 영원하다고 기록된 반면, 이 견해가 말하고 있는 중간적 몸은 잠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의 부활육체와 항의 중간상태 시에 존재하는 신자들의 영화로운 존재 사이에 선택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견해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의 해석 중 어느 하나를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그 중 어느 하나도 완전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지금 논의하고 있는 구절에 대한 칼빈의 해석은 매우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1절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기 원한다. 즉 사후에 영혼의 축복받은 상태는 이 집의 시작이며 마지막 부활의 영광은 이 집의 절정인 것이다.”

 

이처럼 칼빈은 의 해석을 결합시키고 있다. “중간상태부활육체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모두의 관점에서 취급되야 한다.

 

그런데 1절은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인간의 사후에 즉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 위의 장막이 파괴되어 사라질 때(부정과거시제는 죽음이 일어나는 순간을 의미한다) 즉시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집을 소유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육체의 죽음을 맛보는 순간 우리는 현재의 존재처럼 일시적이 아닌 영원무궁한 영광스런 하늘의 존재로 변화하게 된다. 비록 이런 존재의 첫 번째 부활을 기다려야만 하는 완성되지 못한 상태이긴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서 부활로, 부활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전체적 존재양식은 영화로울 것이며 또한 우리의 현재적 존재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3(“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에 표현되고 있는 벌거벗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우리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 사후에 즉시 시작되는 그리고 부활의 몸으로 인해 절정을 이루게 되는 천상의 존재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5절의 벌거벗음이 이러한 천상의 존재양식의 충만한 영광을 결여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표현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현재의 지상적 삶은 벌거벗은 상태이며 따라서 천상의 영광으로 옷입혀지는 우리의 존재와는 구별되고 있다.

 

4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아직도 지상의 장막 속에 있는 동안 근심하며 한숨짓고 있는 것은 우리가 벗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처소로 옷입혀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적 천상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적 존재양식의 죽을 것이 우리를 기다리는 영원하고 영광스런 생명에 의해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다.

 

바울은 6~8절에서 우리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부활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즉시 일어나게 될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8절에서 두 개의 부정과거시제를 보게 된다. 8절의 부정과거시제는 단번에 일어난 순간적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곧 죽음, 곧 몸 안에 거하는 상태로부터 몸을 떠나게 된 상태로의 즉각적인 옮겨짐으로서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죽음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집에 있게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pros(주와 함께)란 단어는 주님과의 매우 가까운 교제를 의미하고 있는데 사후에 우리가 경험하게 될 그리스도와의 교통이 이 땅 위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죽음의 순간에 바울은 주님과 함께 집에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울은 우리가 사후에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밀착됨을 어떻게 경험하게 될지에 관해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우리는 이런 교제의 본질에 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형태의 영상도 그려볼 수 없다. 그때에 우리는 더 이상 육체 안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들과 불완전함들 그리고 우리의 현재적 삶을 괴롭히는 죄악들로부터 구출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롭게 됨은 육체의 부활이 일어나는 순간까지는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상태 동안 우리 믿는 자들의 상태는 칼빈이 가르쳤던 것처럼 불완성의 상태이며 기대의 상태이며 잠정적 축복의 상태인 것이다.

성경은 중간상태에 관하여 독립된 교리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육체 부활, 땅의 새로워짐에 관한 교리와 결코 분리되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미래에 관해 이중적 기대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기대를 갖는다. 우리는 사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할 영원하고도 영광스런 존재, 곧 부활로 인해 절정에 이르게 될 존재를 대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상태와 부활은 하나의 단일한 기대의 두 가지 측면으로서 생각되야 할 것이다.

동시에 중간상태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죽은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살전 4:6)이다. 이들은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14:8)이기 때문이며, 그 어떤 무엇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8:38~39).

 

중간상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가져다 준다. 고린도후서 5:6~8이 보여주는 표상으로 볼 때 우리의 현재의 삶은 실제로는 주님과는 떨어져 있는 일종의 순례의 삶이다. 그러나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고향에 돌아오는 것이다.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순례의 끝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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